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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의 근대의 사생활] 담배 냄새, 향기에서 악취로 곤두박질하다

중앙일보 2010.11.29 20:03 종합 33면 지면보기


대한제국 외교 고문인 미국인 샌즈(William F. Sands)가 한국식 관복을 갖춰 입은채 통역과 함께 담뱃불을 붙이고 있다(1900년께). 담배는 커피나 홍차, 후추보다 먼저 세계화한 기호품이다. 담배의 약성(藥性)에 대해서는 여러 얘기가 있었지만, 입안의 잔 맛을 없애주고 주변의 냄새를 중화하는 것이 일차적인 효용이었다. 담배를 식후나 용변 시에 주로 피운 것도 이 때문이다. [사진 출처 : 『서양인이 본 조선』]

미국의 서부 개척사나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에는 간간이 추적 장면이 나온다. 이런 장면에는 거의 예외 없이 원주민 남성이 등장하여 땅 위의 흙을 한 줌 집어 ‘냄새’를 맡고는 적이 도주한 방향을 정확히 짚어낸다. 무대가 현대로 바뀌면, ‘냄새 맡는’ 역할은 ‘개’ 몫이 된다. 이런 영화들에서 후각은 문명인과 야만인을 가르는 기준이며, 냄새를 잘 맡는 능력은 동물적 속성으로 표현된다.

 오감 중에서 후각은 가장 애매한 감각이다. 후각에는 럭스나 디옵터, 데시벨처럼 계량화할 수 있는 지표가 없다. 건강검진 때도 시력과 청력은 검사하지만 ‘후력’은 검사하지 않는다. 냄새는 서로 잘 섞이며 일단 섞이면 각각을 구분해 내기도 어렵다. 모든 사물을 최소 단위로 독립시켜 계량화하는 데 능숙한 근대인들에게 후각은 불명확한 감각이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은 힘을 기울인 것도 냄새를 몰아내는 일이었다. 오늘날 ‘냄새 난다’는 말은 ‘더럽다’나 ‘의심스럽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세계에서는 냄새 나지 않는 곳이 오히려 드물었다. 방 안은 메주 띄우는 냄새로 진동했고, 방문을 열면 마당 구석에서 두엄더미가 썩고 있었다. 처마 끝에는 약초나 말린 지네가 걸려 있었으며, 마당에서는 변소와 외양간, 돼지우리에서 나는 냄새가 섞였고 대문을 나서면 논밭의 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냄새 나는 것들이 너무 많았으니, 사람들이 냄새를 분간하는 능력도 지금보다 훨씬 뛰어났다.

 냄새에도 선악이 있다. 좋은 냄새는 향기고 나쁜 냄새는 악취다. 우리나라에 처음 담배가 전래된 것은 17세기 초였는데 그야말로 순식간에,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이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의 기호품이 됐다. 당시에도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생각은 있었다. 실학자 이익은 담배를 많이 피우면 “정신과 귀, 눈이 흐려지며 머리칼이 희어지고 얼굴이 창백해지며 이가 빠지고 살이 깎이며 노쇠해진다”고 했다. 그러나 담배 ‘향기’에는 주변의 모든 악취를 제압할 만한 힘이 있었다. 19세기 말 한국인들이 설립한 담배회사들은 곡향합자회사니 향연합자회사니 해서 상호에 흔히 ‘향’자를 썼다.

 담배 ‘향기’의 마지막 쓸모는 냄새 나는 변소와 함께 사라졌다. 이제 담배 냄새는 세상에서 축출해야 할 첫 번째 악취처럼 취급된다. 1909년 일제가 담배의 경작, 제조, 판매에 처음 세금을 매겼을 때, 사람들은 격렬히 저항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 건강’이라는 명분이 ‘세수 증대’라는 본심을 포장하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대놓고 반발하지 못한다.

전우용·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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