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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의 근대의 사생활] 우리나라에서 제일 무거운 동상은?

중앙일보 2010.11.29 01:15 종합 33면 지면보기


1968년 4월 27일 이순신 장군 동상 개막식. 애초 세종로에 세종대왕, 충무로에 충무공, 을지로에 을지문덕, 원효로에 원효대사 등 길이름과 동상 위치를 연계할 계획이었지만, 이 동상을 헌납한 박정희대통령의 지시로 동상 위치가 뒤죽박죽됐고, 이후에도 도로 공사 등을 이유로 위치를 옮겼기 때문에 지금은 동상들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진 출처 : 『격동한반도새지평』]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사람으로서는 더 오를 곳을 찾지 못한 진시황은 불로초를 얻기 위해 동남동녀 500쌍을 뽑아 동해로 보냈다. 그러나 불로장생은 신의 속성이니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조금 뒤에 로마의 황제들은 자기 모습을 꼭 닮은 조상(彫像)을 만들게 하여 우회적으로나마 꿈을 이뤘다. 그 전까지는 신(神)만이 불변과 영속의 속성을 지닌 석상이나 동상으로 모습을 남길 수 있었다.

 생명체의 모습은 언제나 조금씩 변한다. 그 변화를 중단시키는 방법은 동물을 정물로 바꾸는 것밖에 없다. 그림이나 조상(彫像)은 사람의 모습을 찰나에 고정시켜 더 늙지 않게 해주며, 잘만 관리하면 수천 년을 살게 해준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그림 속에 집어넣거나 조상(彫像)으로 만들어 세우는 일은 그에게 ‘신격’을 주는 일이 됐다.

 서양에서는 황제나 왕의 동상을 세우는 일이 드물지 않았지만, 동양에서는 사람의 조상(彫像)은 거의 만들지 않았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근대 이전에 동상으로 모습을 남긴 우리나라 사람은 고려 태조 왕건이 유일한데, 이 동상은 당자(當者)의 능 옆에 함께 묻혔다.

 시민혁명 이후 서양에서 ‘히어로’의 의미는 ‘신의 아들’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인간’으로 바뀌었고, 평범한 집안의 자식도 동상으로 영생할 수 있게 됐다. 영웅과 위인의 동상을 세우는 문화는 제국주의를 따라 동양으로 퍼졌다.

 우리나라에서 사람의 동상을 만들어 세우자는 얘기가 처음 나온 것은 1909년 초였다. 극성 친일파들이 일본에 새로 생긴 동상 문화를 본떠 이토 히로부미 동상을 세우자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토 동상이 ‘신성모독’의 대상이 될까 염려한 일제는 이를 거절했다.

 한반도에 사람의 동상이 실제로 선 것은 1920년대 말부터였다.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 메가타 슈타로, 하야시 곤스케 등의 동상과 사립학교 설립자인 언더우드, 에비슨, 이승훈, 김기중 등의 동상이 각각 연고지에 들어섰다. 이들 중 일본인 동상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개 태평양전쟁 때 포탄으로 바뀌었다.

 1966년에 설립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는 우리 역사상 영웅들을 동상으로 만드는 일에 착수하여 68년부터 5년간 15좌의 동상을 만들었다. 그 무렵 항간에서는 자못 ‘센스 있는’ 난센스 퀴즈가 유행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무거운 동상은? 정답은 ‘동을 정량대로 쓴 동상’이었다. 조성된 지 40여 년밖에 안 된 광화문 충무공 동상이 긴급 보수 대상이 됐다. 그런데 그때 함께 만든 다른 분들의 동상은 안녕하신지? 이참에 두루 문안 여쭐 일이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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