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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인 돼 만나는 400년 전 형제의 후손

중앙일보 2010.11.29 00:24 종합 20면 지면보기



오늘 진주박물관 혈육 상봉



에도시대의 일본인 화가가 그린 홍호연의 초상화 모사본(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1657년 자결한 홍호연이 남긴 참을 인(忍) 글씨. [국립진주박물관 제공]<사진크게보기>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선조의 후손이 지금까지 성(姓)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남양 홍씨(南陽 洪氏) 35세손인 홍갑윤(69·경남 산청군 오부면 중촌리)씨는 일본에 사는 남양 홍씨의 후손을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갑윤씨와 남양 홍씨 무주부사공 종중 종친회장 성대(71·부산 거주)씨 등 20여 명은 29일 오후 고(故) 고우 요시로(洪悅郞)의 장녀인 사와다 다에코(61·澤田多惠子)와 사와다의 사촌 고우 쓰네오(51·洪恒夫) 등 10여 명과 만난다. 국립진주박물관의 ‘임진왜란 조선인 포로의 기억’ 전시회 개막식 자리에서다.



 두 나라 후손들은 이 자리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혈육의 정을 나누고, 다음 날 중촌리 남양 홍씨 재실을 방문해 한 핏줄임을 확인할 예정이다. 중촌리 90가구 가운데 60가구가 남양 홍씨다.



 두 나라로 나눠진 후손들의 사연은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양 홍씨 족보에 따르면 안제(安濟) 할아버지 아래 장남 성해(成海), 차남 천해(天海), 3남 운해(雲海), 4남 진해(進海)가 있었다. 갑윤씨는 막내 진해의 11세손, 성대씨는 장남 성해의 12세손이다. 고우 요시로는 3남 운해의 12세손이다.



 장남 성해(1578~1646·호는 梧村)의 문집인 『오촌선생실기(梧村先生實記)』에 따르면 천해·운해는 1593년 2차 진주성 전투 당시 산음(山陰: 현 산청군)에서 왜군 장수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에 의해 포로로 끌려갔다. 그러나 천해의 행방은 전해지지 않는다.



 한시와 서예에 능한 운해는 일본으로 끌려간 뒤 홍호연(洪浩然·1582?~1657)이라는 이름으로 나베시마 밑에서 일했 다. 호연은 고부(こぶ), 즉 혹부리 모양의 독특한 글씨체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는 말년에 고국으로 돌아오려 했으나 끝내 돌아오지 못한 채 참을 인(忍)자를 남기고 자결했다.



  2003년부터 이 박물관과 교류하고 있는 진주박물관은 나고야성박물관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홍호연이 산청 출신이며, 운해라는 별칭을 사용한다는 점에 착안해 자료를 뒤진 끝에 호연과 운해가 동일인임을 확인했다. 남양 홍씨의 ‘남양 홍씨 세보’와 『오촌선생실기』, 일본 후손이 남긴 『홍호연전』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



진주=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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