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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連戰連敗

중앙일보 2010.11.29 00:11 종합 33면 지면보기
중국에서 전해져 오는 일화다.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亂)이 일어났던 19세기 중엽 때다. 그 난을 진압하기 위해 후난(湖南)의 지역 방위군 격인 상군(湘軍)을 이끌고 전선에 나섰던 증국번(曾國藩)은 반군(叛軍)의 기세에 눌렸다.



 중앙의 조정(朝廷)이 보내주는 원군(援軍)에 기대야 할 만큼 전황(戰況)이 위험했다. 그러나 문제는 계속 반군에게 패하는 주제에 무슨 낯으로 황제(皇帝)에게 원군을 요청하느냐였다. 증국번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먼저 잡은 상주문(上奏文)의 초안(草案)은 이렇게 시작한다. “신(臣)은 거듭 싸웠지만 계속 패했습니다(屢戰屢敗)….” 그러나 표현이 좋지 않았다. 계속 패배만 했다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이른바 연전연패(連戰連敗)였다.



 그는 막료(幕僚)에게 문장을 회람(回覽)토록 했다. 막료 하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표현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얘기였다. 그 막료는 문장을 다음과 같이 고쳤다.



 “신은 전투에서 계속 패했지만 거듭 싸움에 나섰습니다(屢敗屢戰)….” 지는 싸움임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싸움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연전연패’가 ‘연패연전(連敗連戰)’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적군을 막지 못하는 무기력한 장수에서 제 목숨을 걸고 계속 나서는 맹장(猛將)으로 모양이 뒤바뀐 셈.



 증국번의 군대는 결국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했다. 조정으로부터 원군을 지원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미봉책(彌縫策)에 불과하다. 후일 최신 무기와 함정을 갖춘 청(淸)나라의 북양함대(北洋艦隊)가 그보다 못한 장비의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가 대패한 사실을 두고 보면 더 그렇다.



 천안함 사건에 이어 연평도에서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한 대한민국 국방의 책임자들이 새겨 볼 일이다. 그 지휘 아래에 있던 일반 장병들의 고투(苦鬪)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방은 북한의 기습적인 도발에 무너졌다. ‘연전연패의 군대(軍隊)’라는 이름을 달아도 이의를 제기할 자격이 없다.



 행여라도 “적이 예상치 못한 도발을 벌였으나 우리는 계속 나서서 열심히 싸웠습니다…”라는 보고서를 올릴 생각은 아예 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런 말장난으로 때울 만큼 상황이 녹록지 않다. 국방부는 교묘한 변명보다는 철저한 반성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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