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론] 북한의 지속적 도발, 악순환 고리 끊으려면

중앙일보 2010.11.29 00:10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북한은 2009년 2월 17일 인민군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라고 지칭하고, 남북관계를 원점으로 돌리겠다는 폭언 이후 말 그대로 끊임없는 도발을 감행해 왔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발사 실험, NLL 침범에 이어 금년 봄부터는 도발 수준을 대폭 높여 대한민국 국군과 민간인의 인명을 살상하고 있다. 천안함 공격 이후 자신들 소행이 아니라고 발뺌했던 북한은 이번 연평도 공격에 대해서는 대놓고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북한 도발의 악순환적 고리를 끊지 않는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북한과 전면전을 치를 것인가 혹은 무릎을 꿇을 것인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난감한 상황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연평도 포격은 ‘도발’이 아니라 침략적 공격이며 대한민국의 국격(國格)과 국가안보에 치명상을 입힌 엄중한 사건이다. 천안함 공격보다 인명 피해가 적은 연평도 포격 사건이 더욱 엄중한 사안이 되는 이유는 천안함의 자리는 대한민국의 다른 군함이 메우고 있지만, 연평도의 빈자리는 누가 메울 것이냐라는 국가의 본질에 관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경황없이 집과 땅과 재산을 버리고 육지로 피란 나온 연평도 주민들은 언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들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 국가의 임무 아닌가? 대한민국은 연평도 주민들에게 무어라 말할 것인가?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강력하게 응징할 것이라는 말로 이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킬 수 없다. 천안함 전사자 46명을 보내던 날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앞으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할 경우 북한을 그대로 놔두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다짐했다. 그러나 북한은 아예 그 말 자체를 비웃고 있었다. 백주의 대낮에 연평도를 향해 다연장 로켓을 포함해 무차별 포격을 해댄 북한은 대한민국의 강력한 응징을 받지 않았다.  



 천안함이나 연평도 부류의 도발을 사전에 막는 것은 군(軍)은 물론 국가가 담당해야 할 임무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는 사실 ‘대한민국’이 ‘억제’(deterrence)에 실패한 결과다. 저명한 국제정치 게임이론가 부에노 드 메스키타 교수는 “북한 지도자들은 한국 해군에 공격을 가하더라도 전쟁으로 이어질 확률이 낮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천안함 사건을 설명했다. 북한이 인식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자국 군함이 격침당하고 병사 수십 명이 목숨을 잃어도 맞대응할 수 없는 나라다.  



 ‘의지’가 없는 나라는 아무리 훌륭한 무기가 많아도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8월 20일자 타임지는 북한을 “돈을 내놔라! 안 주면 유리창에 벽돌을 집어 던지겠어!”라고 소리치는 ‘마피아’ 같은 나라에 비유한 후 “천안함 사건을 저지르고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은 북한이 벽돌 던지는 일을 그만 둘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라며 추가 도발의 확실성을 경고한 적이 있다.  



 한국을 우습게 본 북한은 그동안 잘 준비해 온 연평도 공격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천안함 공격의 다음 수순이 서해 5도에 대한 포격일 것이라는 점은 전략의 상식이며, 대한민국의 국가안보 책임자들은 능히 사전에 이 같은 일을 예측하고 대비했어야 했다. 우선 북한이 공격할 시 즉각 ‘카운터펀치’를 날려 보복했어야 했다. 포탄 100발을 발사하면 500발, 1000발로 보복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갖추고 있었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고 대한민국을 모욕하면 할수록 후계자 김정은의 권력이 더욱 공고화된다고 믿는 북한은 앞으로도 여러 차례 더 대남 공격을 가해 올 것이 분명하다.



‘북한 추가 도발 시 몇 배로 응징’이라는 반복되는 수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북한 정권을 향해 대한민국은 불법적 도발에 맞서 ‘전쟁을 불사’할 수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시키는 것이다. 분명하고 단순한 언급이 필요하다. 국제정치학적 적실성(適實性)이 검증되지 않은 햇볕정책에 세뇌된 다수의 대한민국 지도자와 국민이 ‘평화’와 ‘항복’을 혼동하고 있다. 이 같은 착각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북한 도발의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