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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파리는 깨지지 않는 계란을 먹지 않는다”

중앙일보 2010.11.29 00:09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종윤
경제부문 차장




홍콩에서는 조지 소로스라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던 때가 있었다. 투기자본이 아시아를 휩쓸던 1997년이다. 소로스가 홍콩달러를 공매도(空賣渡, Short Selling)하겠다고 나섰다. 공매도란 ‘없는 걸 판다’는 뜻이다. 홍콩달러 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해 비싼 값에 먼저 판다. 이어 값이 내리면 홍콩달러를 구해 산 사람에게 넘기면 된다. 떨어진 가격만큼 이익을 올리는 약세장 투자방법이다.



 홍콩 금융관리국은 긴장했다. 소로스에 대항할 방법을 고민했다. ‘보유한 미국 달러로 시중의 홍콩달러를 모두 사들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소로스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홍콩달러를 사지 못하면 싸움도 하기 전에 낭패를 볼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홍콩 관리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정작 투기자본의 목표는 주식시장이었다. 시중에서 홍콩달러가 마르자 돈 값이 뛰었다. 홍콩달러를 구하려면 높은 이자를 줘야 했다. 10월 23일 이자는 280%까지 올랐다. 금리가 폭등하면서 주가는 폭락했다. 이날 홍콩 주식시장에서는 300억 달러의 시가총액이 날아갔다. 반면 소로스는 돈을 긁어 모았다. 홍콩 중문대 랑셴핑(郞咸平) 석좌교수는 자신의 책 『중미전쟁』에서 ‘소로스가 외환시장을 공격하기 전에 8만 건의 주식 공매도 계약을 맺었다’고 지적했다.



 소규모 개방경제는 이렇게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아시아 금융의 허브라는 홍콩조차 꼼짝없이 당했다. 한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지난 11일 서울 증권시장도 넋이 나갔다. 한 외국인이 이날 동시호가 때 판 주식은 애초 알려진 1조8000억원보다 더 많은 2조3000억원어치나 된다. 한 방에 현물시장은 고꾸라졌다. 하지만 선물시장에서 풋옵션 매수로 수백 배를 번 투자자들이 생겼다. 투기세력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금융당국이 조사 중이지만 실상을 정확히 밝혀낼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그만큼 공격이 지능적이라는 얘기다. 이런 투기 폭격은 과거에도 비일비재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게다. ‘개방’을 택한 한국이 짊어져야 할 숙명인지 모른다.



 그런데 운명 타령만 하기에는 억울하다. 이런 투기세력의 융단폭격으로 경제는 거덜날 수 있다. 한 방에 전재산을 날린 투자자들의 삶은 파탄 날 수 있다. 물론 이들도 욕심 내다 화를 당했지만 형벌이 너무 가혹하다. 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폭발하자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소로스가 아시아 경제를 결딴냈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소로스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아니라도 다른 이가 그렇게 했을 것이다. 파리는 깨지지 않는 계란을 먹지 않는다.” 어수룩해 먹잇감이 된 나라를 오히려 꾸짖은 것이다.



 한국 증권시장이 공격당한 지난 11일 서울에 모인 G20 정상들은 ‘신흥국이 급격한 자본 유출입을 통제하는 걸 허용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렇다고 통제한답시고 문을 닫지는 말자. 대신 깨지지 않는 계란을 만드는 실력을 보여주자. 이게 먹잇감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김종윤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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