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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읽은 책] 『욕망하는 식물』

중앙일보 2010.11.27 00:23 종합 22면 지면보기



내가 만약 사과나 튤립이라면? 독창적 이야기 만드는 법



김탁환
(소설가, 계간 ‘1/n’ 주간)




소설가로 15년을 살다보니, 이야기 만드는 비법을 알려달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비법 따윈 없다고 답하면서도, 이야기에는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그 인물 각자의 입장에서 적나라하게 욕망을 드러내는 연습을 자주 해보라 권한다. 통섭 혹은 융합적인 콘텐츠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도 나와 다른 성장환경과 전문지식과 욕망을 지닌 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우정의 자세다.



몇 년 전에 나는 16세기 기생의 욕망을 『나, 황진이』라는 소설로 다룬 적이 있다. 남자인 내가 여자의 목소리로 책 한 권을 쓰는 것은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



『욕망하는 식물』(마이클 폴란 지음, 이경식 옮김, 황소자리)은 서너 걸음 더 나아가서 ‘나, 식물’의 관점에서, 인간과 식물이 공존해온 기나긴 역사를 검토한다. 창의성이란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는 힘이 아니라, 남들과 다르게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다. ‘욕망하는 식물’은 그 다름이 얼마나 독창적인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내는가를 증명한 교본과도 같다.



여러분이라면, 사과와 튤립과 대마초와 감자의 입장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호러? 스릴러? 추리? 모험? 어울리는 장르가 언뜻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폴란이 택한 장르는 달콤 살벌한 ‘로맨스’다. 여러 종이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진화하는 공진화(共進化)의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이 식물을 길들인다고 믿었던 시간 동안 식물 또한 인간을 길들인 과정을 다룬 것이다. 길들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린왕자』의 명장면인 사막여우와 나눈 대화에서 짐작하듯, 길들인다는 것은 사랑하는 과정 그 자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식물과 인간의 사랑은 마냥 감상적이지만은 않다. 식물들은 오감을 통해 인간의 뇌를 자극하여 자신들의 개체수를 급격하게 늘려나간다. 특히 달콤함을 무기로 삼은 사과나 황홀함을 전면에 내세운 대마초의 유혹은 그 어떤 사랑의 밀어보다도 강력하다.



그때 식물들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손짓한다. 어서 오렴, 인간꿀벌! 융합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인간을 넘어, 동물을 넘어, 식물의 관점에서 이 세상의 잘잘못을 다루어보라. 그 이야기에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어떤 모습인가. 이 책이 인간중심의 생태파괴를 경고하는 강력한 이야기로 읽히는 것도 이 대목이다.



김탁환 (소설가, 계간‘1/n’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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