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북한·이란·파키스탄 ‘우라늄 벨트’ 뒤에 칸 있다

중앙일보 2010.11.23 00:27 종합 4면 지면보기



세계 핵 확산 주범 ‘칸 네트워크’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면서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핵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받아 왔던 이른바 ‘칸 네트워크’가 현실로 드러났다. 칸 네트워크는 파키스탄 핵 개발을 주도한 압둘 카디르 칸(사진) 박사가 원심분리기를 통한 우라늄 농축 기술을 이란·북한·리비아 등에 비밀리에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며 붙여진 이름이다.



북한은 지난 12일 시그프리드 헤커 미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에게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주며 “자체 기술과 자원으로 제작됐고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 우라늄 농축시설엔 근본적으로 칸 박사가 제공한 ‘원천 기술’이 작용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칸 네트워크’는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전 대통령이 2006년 자신의 자서전(『사선에서』)을 통해 칸 박사가 1990년대 말부터 북한에 P-1 원심분리기 20개와 이보다 성능이 좋은 P-2 원심분리기 4기 및 관련 설계도 등 핵심 기술을 제공했음을 공개하며 공식화됐다. 당시 칸 박사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칸 연구소를 통해 이란과 리비아에도 원심분리기와 부품 및 관련 물자를 줬다. 칸 박사를 중심으로 이란-북한-리비아의 원심분리기 축이 형성된 셈이다. 이 가운데 리비아만 2003년 12월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했다.



 이번에 헤커 소장이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을 둘러보면서 “(이 원심분리기들은) P-1인가”라고 묻자 북한 기술진은 “아니다”라며 “로터(원심분리기 내 회전자)는 철 성분이 포함된 합금”이라고 답했다. P-1은 로터가 알루미늄강으로 만들어진다. 북한 기술진은 계속된 질문에 “모든 구성품은 자체 제작됐고, (네덜란드의) 알메로와 (일본의) 로카쇼무라 원심분리기를 모델로 만들어졌다”고 답했다. 그러나 북한이 본떴다는 알메로는 영국·독일·네덜란드 3국의 컨소시엄인 유렌코사가 운영하고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로, 유렌코는 칸 박사가 근무했던 회사다. 그는 이곳에서 원심분리 기술을 몰래 훔쳐내 72년 파키스탄으로 들여오며 파키스탄 핵 개발의 출발점을 만들었다.



 또 파키스탄이 북한에 제공한 P-2 원심분리기는 강철 합금(머레이징강)을 로터로 쓴다. 북한은 97년 파키스탄 주재 외교관을 통해 러시아 업체로부터 머레이징강을 구입하려 시도한 바 있다. 이춘근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 수석대표는 “헤커 소장이 묘사한 지름 20㎝, 높이 1.8m의 원심분리기라면 P-1에 가깝지만 강철 합금을 썼다면 P-2까지 가미한 북한식 개량형일 수 있다”며 “이 경우 북한이 기술적으로 보다 진전된 원심분리 기술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칸 네트워크는 파키스탄 군부의 소탕과 미국의 압박으로 2000년대 초반 외형상 와해됐다. 그러나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로 새로운 북한판 핵 네트워크가 등장할 가능성에 국제사회는 긴장하고 있다. 당초 파키스탄에 노동 미사일 기술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우라늄 농축 기술을 받았던 북한이 핵 기술 수혜자에서 ‘확산 주역’으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핵 없는 세계’의 비전을 내건 미 오바마 행정부엔 최악의 시나리오일 수 있다.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원심분리기 기술을 미얀마나 중동 국가에 수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는 미국 등 국제사회를 겨냥한 최고의 압박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채병건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