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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 터진 뽀얀 달항아리 … 넉넉한 어머니 품 같은

중앙일보 2010.11.23 00:24 종합 24면 지면보기



도예가 이수종 전



이수종씨가 도자 인생 40년 만에 처음 빚은 달항아리. 옛것을 배워 오늘을 표현하니 발과 발을 이어 붙인 배꼽 부분이 툭 터져나간 새로운 작품이 탄생했다. [이도갤러리 제공]



이 달 항아리, 수상쩍다. 배꼽 부위가 터졌다. 달덩어리 같이 미끈하고 큰 며느리처럼 수더분하던 그 달 항아리가 아니다. 상처 입은 영혼이 안으로 터뜨리는 신음을 머금은 듯 아파 보인다. 원형에 가깝도록 둥글게 말아 올린 조선 백자의 무릉도원이 사라졌다. 뭔가 반항하고 있는 듯 꿈틀거리는 항아리다. 18일부터 서울 가회동 이도갤러리에서 관람객을 맞고 있는 도예가 이수종(62)씨의 달항아리 중 하나다.



 물론 전형적인 조선 백자 달항아리를 좇은 것도 나왔다. 오래 세월 분청(粉靑) 자기만 빚어오던 그가 갑자기 백자 달항아리 작업에 매달린 속내가 궁금하다.



 “흙을 가지고 논 지 40년, 그 동안 하지 못한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달항아리 공부를 하며 올 여름을 보냈죠.”



그는 숙제라고 했다. 차갑고 까다로우며 인위적인 느낌이 강해서 작가의 성품과 맞지 않는다는 편견 탓에 미뤄두었던 달항아리를 마침내 붙잡았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저 커다란 발(鉢) 두 개를 만들어 붙이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한데 그게 아니야. 조선시대의 달항아리는 그 당시 최고의 기능을 지닌 장인의 천재성이 만들어낸 명작이란 걸 새삼 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그는 “달항아리가 보여주는 형태의 멋은 단순히 깎아서 외부의 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기운에 의해 안으로부터 배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풍만함과 넉넉한 자연스러운 멋은 장인의 정열과 노동에 의해 불로 완성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걸 느낄 만한 세월이 흘렀을 때 달항아리가 이씨 가슴으로 걸어 들어왔다.



 500년이라는 시간의 축적 속에 태어난 달항아리를 교과서 삼아 겸손하게 작업하는 작가의 모습을 전시장 안에 설치된 제작과정 영상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흙 앞에 겸손하게 자신을 부려놓고 묵묵히 물레를 돌리며 이 시대의 달항아리를 염원한다.



 “옛것을 오늘에 되살린 위에 이 시대의 달항아리도 필요하다 싶었어요. 두 개의 발을 이어 붙인 부분이 터져나간 건 시대의 바람이랄까, 내가 앞으로 만들 달항아리의 맛보기랄까.”



 자신의 달항아리를 사진으로 찍어 벽에 붙여놓은 설치도 작가가 제안했다고 한다. “평면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입체의 질감을 느껴보시라”는 의도란다. 뽀얀 달항아리 12점이 의젓하게 솟아난 전시장은 정월 대보름처럼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전시는 다음 달 2일까지. 02-741-0724.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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