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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쓰다, 불현듯 찾아오는 발견의 순간

중앙일보 2010.11.23 00:22 종합 25면 지면보기



3년 만에 새 시집 『타인의 의미』 펴낸 김행숙 시인



김행숙씨는 “반드시 새로운 시를 선보여야겠다는 생각보다 이전부터의 생각을 밀고 나가다 보니 낯선 시들이 써지는 것 같다”고 했다. [중앙포토]



위로와 힘이 되기보다 낯선 체험이자 하나의 도전이 되는 시. 대표적인 ‘난해파’ 시인 김행숙(40)씨가 세 번째 시집 『타인의 의미』(민음사)를 냈다. 두 번째 시집 『이별의 능력』 이후 3년 만이다. 그 동안 쓴 65편을 모았다.



 ‘역시, 김행숙’이란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새로 실린 시들은 대체로 허술한 독서를 허락하지 않는다. 첫 머리에 실린 ‘포옹’부터 그렇다.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로 시작하는 시는 의미 파악이 쉽지 않다. 연작시 ‘호흡’의 세 번째 시는 정확한 제목이 ‘이 사람을 보라-호흡 3’이다. 본문은? 없다. 제목만 있는 시다. 표제시 ‘타인의 의미’ 역시 버겁기는 마찬가지. 의미하는 바가 잡힐 듯 흩어지는 듯 알쏭달쏭하다.



 그렇다고 해독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정황이 구체적이고 행이 긴 산문시에 가까운 시들이 쉽게 읽힌다. 대표적인 게 ‘어떤 손님’이다. 제목대로 손님이 찾아왔다. 헌데 그는 얌전히 방문한 게 아니다. ‘더러운 신발에서 끈을 풀고 솟구쳐 오르는 손님’이다. 순간 시의 화자는 2년 전을 떠올린다. 당시 화자와 손님은 ‘법적으로 결혼 가능한 친족’에 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화자는 당시를 ‘비밀스러운 애정과 비밀스러운 적의가 비밀스럽게 교환되는 자리’로 기억한다.



 비대중적인 김씨 시의 의의는 어떤 것일까. 2006년 미당문학상 수상자인 김혜순씨는 시집 뒷표지 표사글에서 ‘김행숙의 시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해설을 쓴 평론가 이광호는 한 걸음 더 나간다. ‘김행숙으로부터 시작되어 김행숙으로 흘러 들어 간 시적 변이는, 이제 2000년대 한국 시단의 거부할 수 없는 뉴웨이브가 되었다.’ 문학사적인 의미부여다.



 때문에 김씨의 시를 읽는 일은 요즘 한국 현대시의 향방을 엿보는 일이 된다. 김씨로부터 ‘해설’을 들었다. “내 시의 ‘낯설게 하기’ 방식은 기법의 차원이 아니라 정신의 차원이다. 언어와 세계의 왜곡을 통해서 낯설어지는 게 아니라 눈꺼풀을 덮고 있던 관념을 제거한, 맨 눈의 상태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정교한 계산에 따른 게 아니라 불현듯 찾아오는 발견의 순간에 쓰인 것들이라는 얘기다.



 김씨는 또 “타인은 근본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존재라는 점, 그런 속성은 나와의 관계 속에서 잘 드러난다는 점을 밝히고 싶었다”고 말했다. 낯선 시각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 보기. 이번 시집의 중심 테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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