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호근 칼럼] 국회의원의 나라

중앙일보 2010.11.23 00:05 종합 35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본격적인 입시철로 접어든 요즘 대학의 어설픈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것도 선망의 대상인 서울대학교가 실은 어수선한 내면을 어쨌든 추슬러 왔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엔 당연히 자괴감이 따른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주 서울대 학장단이 국회를 방문했다. 1년 넘게 국회에 방치되어 있는 ‘서울대법인화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 선의의 방문단은 교과위 수비대장 격인 모(某) 의원의 성난 얼굴과 마주쳤다. ‘학장들이 몰려다니며 로비나 하고!’ 학장들이 졸지에 로비스트로 격하되었을 때 ‘대포폰’과 ‘10만원 후원금’ 공방전에 돌입한 국회는 300여 명의 초등학생 견학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몸싸움과 욕설로 얼룩졌다. 서울대가, 한국의 대학교육이, 정치적 계산과 관료의 통제에서 놓여날 날은 도대체 언제 올 것인가.



 서울대의 아카데미즘은 관료주의로 중병이 들었다. 그게 학생과 무슨 상관인가라고 반문하겠지만, 입학과 동시에 학생들은 학교 조직에 촘촘히 스며 있는 관료제적 행정망 속으로 무심코 진입해서 거대한 지식공장의 일원이 된다. ‘빛나는 국립서울대학교’는 입시에서 교수 채용, 교육과 연구, 학생 지도를 관할하는 관료 통제로 인하여 빛이 바랜다. 그러고도, 세계 50위권까지 올랐다는 것은 기적이다. 교과부는 1946년 ‘서울대설치령’이 제정된 이래 서울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독해온 최고의 사령탑이었고, 총장은 공문서의 집행관, 교수는 말단 집행요원이었다. 정권마다 쏟아내는 정책 메뉴들, 교체가 잦은 장관들의 야심 찬 변덕을 감당하면서 여기까지 버텨왔다는 것은 경이롭다.



 관료 통제의 독(毒)은 치명적이다. 미국의 유명 교수가 모교에 부임했다가 가버린 예가 한둘이 아니다. 번다한 절차에 기가 질렸다. 학생 지도 예산도 두당(頭當) 얼마 식의 인두세로 계산되고, 절약과 효율성을 앞세운 정부 예산 원칙 때문에 명사 초청은 엄두를 못 낸다. 학생들과의 회식엔 당연히 월급을 쪼개고, 융합학문을 위한 공동 강의엔 시수(時數) 계산이 복잡해 아예 그만두기 일쑤다. 뭔가 혁신적 사업과 발상을 주저앉히는 규제들이 지뢰처럼 깔린 상황에서 교수들이 터득한 최선의 선택은 방목(放牧)이다. 65년 묵은 관료 규제가 교수의 손길을 가로막는다.



 교수들이 요즘 안타까워하는 사실이 있다. 한국의 수재들이, 아니 대학생 전반이 국가도 사회도 아니고 자신들의 입신양명에 매진한다는 점이다. 풍요의 시대에 태어난 세대의 풍요로운 꿈이라면 좋겠다. 그런데 교양과 역사인식이 돈과 출세에 아무 영향이 없다는 것을 이미 터득한 이 학생들은 미래 불안에서 탈출할 생각으로 마냥 불안하다. 고시와 취업 준비 열기가 점령한 서울대를 교수가 재탈환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학생들은 ‘교양인’을 버리고 ‘전문인’이 되기로 선회한 지 오래고, 교수들은 논문 생산에 매달릴 따름이다. 엘리트 집단이 갖출 시대소명을 자주 토로하는 중견교수는 개념이 없는 사람이다. 사정이 이러한 데는 교수들의 책임이 크지만, 규제망 속에선 방관이 최고의 덕목이 되었다.



 관료 통제가 아카데미즘의 성장 억제 호르몬처럼 주입되는 한국에서 총장의 역할도 제한적이다. 과거 잠시 보직을 맡은 적이 있다. 국립대 총장들은 가용시간의 50%는 규제 요건과 관련된 회의와 결재, 20%는 내·외부 행사와 손님맞이, 10%는 연구비와 발전기금 모금에 쏟고, 겨우 10% 정도 숨을 돌려 학생 교육, 대학 비전, 정책 대안들을 고민하는 듯했다. 3D업종이나 다름없다. 최고의 인재를 길러내는 수장, 성균관 대사성을 3D업종으로 격하시킨 주범이 바로 국가의 빈약한 예산 지원과 용의주도한 관료 통제다. 정부 예산, 등록금, 교수들이 따온 연구비가 각각 3할씩인 것이 서울대의 재정상황이다. 3할 지원으로 대주주를 자임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은 이렇게 비난한다. “예산은 투입되었으나 변한 것은 없다”고. 그러나 관료 규제와 정치 개입을 해독(解毒)하지 않았다면 대학 교육은 더 누더기로 변했을 것이다.



 서울대 학장단은 65년 지속된 이 국가관리체제를 끝내달라고 국회로 갔던 것이다. 마침 교과부도 적극 찬성했던 법인화가 그것이다. 관료로부터의 독립선언이야말로 아카데미즘의 근본정신을 회복하고 교수들이 방목되는 학생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전제조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역사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공신들을 무한정 배출하는 이 무책임한 교육체제가 연장되는 것을 지켜볼 따름이다. 작년 9월 서울대학의 최고의결기구인 교수평의회를 37대6으로 통과한 이 법안은 최종 결재자인 국회 교과위 서류창고에 밀봉상태로 처박혀 있다. 서울대의 궁색한 현실이, 이 나라 수재들의 발달장애가 표의 득실과 정치적 계산에 의해 밀봉된 것이다. 국회의원의 나라엔 표의 손익표만 있을 뿐 대학의 미래는 없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