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정일은 플루토늄, 김정은은 우라늄탄 … 핵보유 굳히기

중앙일보 2010.11.22 00:37 종합 3면 지면보기
“Serious(심각하다).” (미 행정부 당국자)


북한, 원심분리기 공개 왜 …
3대 세습 다지기
미국에 대화 압박
미국의 대응은

 “사실이라면 아주 심각.”(우리 정부 당국자)



 북한이 최근 방북한 미국의 시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전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장)에게 초현대식 통제실에 설치된 1000여 개의 원심분리기를 보여준 데 대해 21일 한·미 당국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원심분리기 2000개를 1년 동안 돌리면 우라늄탄 약 1개 분량의 우라늄을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이 원심분리기의 성능을 높이고 개수를 늘리면 우라늄탄 양산 체제에 돌입하는 것을 뜻한다. 북한이 그동안 영변의 5㎿e원자로와 핵재처리시설을 통한 플루토늄탄 제조에 집중해온 점을 감안하면 중대한 사태 진전이 아닐 수 없다. 플루토늄-우라늄의 두 핵무기 제조 방식을 통해 핵보유국 입지를 굳히려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은 그만큼 복잡하게 됐다. 북한은 현재 영변에 저농축 우라늄을 원료로 사용하는 실험용 경수로를 건설 중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1, 2차 핵실험 장소인 함북 길주군 풍계리에 새 갱도를 건설하는 등 3차 핵실험 준비 징후도 보이고 있다. 이런 북한의 동시다발적 핵위협은 천안함 사건 이후 소강 국면으로 흘렀던 한반도 정세에 다시 파고를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 ‘핵 없는 세계’를 추진해온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타격을 입히고, 중국의 대북 영향력도 다시 시험대에 올릴 전망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과 다른 6자회담 참가국 간에 대화 물꼬가 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북한의 의도는=다목적이다. 첫째는 핵무기 제조 능력 향상이다. 북한의 5㎿e원자로는 80년대 건설돼 노후화한 만큼 안정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북한은 그 대체용으로 우라늄 농축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북한의 후계구도 구축과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 김정은이 우라늄 핵개발을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워 지도자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플루토늄탄에 집중했던 김정일 시대와 달리 김정은은 우라늄탄 개발에 나서게 되는 셈이다. 셋째는 협상에서의 우위 선점이다. 지난해 5월 2차 핵실험 이래 북한은 미국에 여러 차례 대화를 제의했으나 “비핵화의 진정성부터 보이라”는 답만 들어왔다. 이에 따라 북한은 북핵 문제가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급박한 위협’임을 미국에 인식시키고 대화 재개 시 우위를 선점하려는 목적에서 헤커 소장에게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했다는 게 북핵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성한(정치학) 고려대 교수는 “사고를 친 뒤 미국을 협상에 끌어들이고, 그때까지의 도발을 동결하는 선에서 보상을 받아내는 북한의 전형적인 술수가 재현된 것”이라며 “한·미는 이번 북한의 우라늄 카드를 얼마나 ‘급박한 위협’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북한과의 대화 재개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미의 대응은=일단 한국과 미국은 중국·일본·러시아 등 6자회담 참가국들과 공동 대응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한이 우라늄 카드를 꺼낸 것으로 확인된 지난 주말부터 관련국을 순방하며 공동전선 형성에 나섰다. 특히 한·미는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을 집중 설득해 북한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 때문이다.



 일단 미국은 북한의 우라늄 시설 공개에도 불구하고 “비핵화에 진지한 행동을 보여주지 않으면 북한과 재협상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비롯해 미 행정부 내에선 그동안 북한과의 대화가 전면 중단된 데 대해 우려를 제기해온 데다 북한의 우라늄 핵개발은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해온 ‘핵 없는 세계’ 비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만큼 미국은 한국의 동의를 전제로 북한과의 대화 쪽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한·미는 북한이 1990년대 말 파키스탄의 A Q 칸 박사로부터 원심분리기 기술을 이전받은 이래 10여 년간 우라늄 핵개발을 추진해온 사실을 이미 파악해왔 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북한이 플루토늄과 함께 우라늄 핵개발도 해온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북한에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면 획기적인 경제지원을 한다는 ‘그랜드바겐’(일괄타결)을 제의해온 것이며 앞으로도 이런 원칙에서 북한에 핵 포기를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 간 힘겨루기와 관련국 간 외교전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강찬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