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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스 핵 공장’ … 정찰위성으로도 사실상 포착 불가능

중앙일보 2010.11.22 00:34 종합 4면 지면보기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핵무기 개발 계획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2002년 10월 북한이 이 계획을 방북한 미국 정부대표단에 시인하면서 불거진 2차 핵 위기 발단의 실체가 북한 스스로의 공개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북, 핵무기용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고농축우라늄 왜 위험한가

그동안 이 계획의 진짜 여부를 놓고 미 정보기관과 국내에서 논란이 일었으나 이번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를 직접 보고 위협적이라고 판단한 사람은 미국 굴지의 핵 과학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문제는 8년 전 처음 불거졌다. 2002년 10월 방북했던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귀환 후 “북한이 HEU 핵 프로그램을 시인했다”고 말하면서 2차 핵 위기가 시작됐다. 켈리 일행이 원심분리기용 고강도 알루미늄관 수입 통관 자료 등 북한의 HEU 핵 프로그램 증거를 들이대자 북한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현 부총리)이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돼 있다”며 인정했다는 게 켈리 차관보의 주장이었다. 당시 북한은 독일로부터의 알루미늄관 수입에 실패하자 러시아로부터 분리기 2500개를 만들 수 있는 물량을 사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켈리 방북 한 달 뒤 미국을 비롯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대북 중유 지원을 중단했다. 12월에는 북한이 핵 동결 해제를 선언하고 이듬해 1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맞서는 등 우라늄 농축 계획은 2차 북핵 위기의 진원지였다. 북한은 2003년 8월 시작된 북핵 6자회담에서 우라늄 농축 사실을 부인하는 등 미국의 의혹 제기를 “대북 압살을 위한 거짓 주장”으로 몰아붙였다.



 2006년 10월 북한의 핵 실험 감행 이후 플루토늄 핵 개발에 관심이 쏠리면서 우라늄 농축 방식은 잠시 여론의 뒷전에 밀리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외무성 성명을 통해 “우라늄 농축 기술 개발이 성과적으로 진행돼 시험 단계에 들어섰다”고 밝혀 오랜 기간을 두고 HEU 프로그램이 이뤄졌음을 시인했다. 헤커 소장에게 원심분리기를 보여 준 것은 1년여 만에 이를 실물로 공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헤커 소장은 북한의 원심분리시설이 ‘초현대적 통제실(an ultra-modern control room)’을 갖췄다고 밝혔다. 외화 부족 등 경제난과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우라늄탄 제조 과정의 기초를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그동안 치고 빠지기 식의 연막을 치면서 시간 벌기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이영종 기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플루토늄탄과 우라늄탄 … 어떻게 다른가



플루토늄탄, 원자로 돌려서 만들어 … 제조 어렵지만 탐지는 쉬워

우라늄탄, 원심분리기 2000개로 1년 돌려야 겨우 탄두 1개분



핵무기는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Pu-239)을 재처리(추출)해 만드는 플루토늄탄과 고농축우라늄(U-235 90% 이상)으로 만드는 우라늄탄으로 나뉜다.



북한이 2006년과 2009년 함북 길주군 풍계리에서 실시했던 핵실험은 모두 플루토늄탄이다. 이번에 북한이 공개한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는 우라늄탄 제조에 필수적이다. 플루토늄탄 제조는 영변의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을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징후를 파악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원자로 가동 시간 등으로 플루토늄 추출량의 추산도 가능하다.



반면 우라늄 농축은 지하나 지상 시설에서 원심분리기를 가동하는 만큼 정찰위성으로 포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외교 소식통은 “과거 우라늄탄 제조를 추진했던 남아공의 비핵화 과정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놀이공원 내 간이 건물 지하에서 원심분리기 시설을 발견해 깜짝 놀란 일화가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가 더 긴장하는 이유다.



 우라늄탄은 천연 우라늄 속에 있는 U-235의 비율을 높인 고농축우라늄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원심분리기가 필요하다. 알루미늄통 속에 천연 우라늄(U-235 성분 0.7%)을 화학 처리한 육불화우라늄을 넣어 분당 5만 회 이상으로 돌리면 질량 차이로 U-235가 가운데 모여 90% 이상의 고농축우라늄을 얻을 수 있다.



이춘근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 수석대표는 “원심분리기는 1∼2m 높이에 지름 10∼20㎝ 정도로, 북한 주장대로 2000개를 설치해도 큰 공간이나 시설이 필요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라늄탄 한 개에 들어가는 고농축우라늄이 20∼30㎏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북한이 원심분리기 2000개를 실제 돌리고 있다면 구형 원심분리기(P1)일 경우 1년에 한 개, 개량형(P2)일 경우 최대 두 개의 우라늄탄을 만들 수 있다”고 추산했다.



플루토늄탄은 원자로에서 태우다 꺼낸 사용후 핵연료봉을 재처리시설(북한은 방사화학실험실)에서 화학처리해 얻는 플루토늄으로 만든다.



 우라늄탄 제조에 쓰이는 ‘포신형’ 방식은 플루토늄탄의 ‘내폭형’ 방식에 비해 제작이 쉽다. 우라늄탄은 핵실험 없이 실전 배치돼 왔다. 첫 우라늄탄인 미국의 ‘리틀보이’도 핵실험 없이 일본에 투하됐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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