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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엉성한 검투사 중수부장

중앙일보 2010.11.22 00:09 종합 38면 지면보기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검찰은 비리와 결투를 벌인다. 대한민국 검찰이 상대할 수 있는 최고위급 상대는 전직 대통령이다. 현직 대통령은 일반적인 비리로는 기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검사를 검객(劍客)이라 하면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는 검사는 검찰 최대의 결투를 치르는 셈이다. 검사로서는 일생일대의 영광이요 승부다.



 건국 이래 이 영광스러운 승부를 벌인 이는 2명뿐이다. 1995년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군사반란과 비자금을 수사하는 특별본부장을 맡았다. 다른 한 사람은 이인규씨다. 그는 지난해 대검 중수부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족의 비자금 사건을 수사했다.



 최고권력을 지낸 전직 국가원수와 검찰의 일대 결전…. 이는 전쟁을 빼놓고 한 국가가 치를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승부일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패하면, 자신뿐 아니라 5년간 나라를 이끈 정권주체세력의 정통성이 흔들린다. 아니 그 세력을 넘어 국가의 체면과 위상에 커다란 상처가 생긴다. 반대로 검찰이 패하면, 사정(司正) 중추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타격을 입는다.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는 검사는 검찰의 대표 검투사다. 대표 검객이 패하면 검찰 전체가 실점(失點)하게 된다.



 그러므로 대표 검투사는 칼끝 하나 어긋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이인규는 졌다. 전직 대통령을 소환할 때는 미리 완벽한 증거를 갖춰놓아야 한다. 그리고 소환 후에는 신속하게 기소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동요와 세력 갈등을 최소로 줄일 수 있다. 이는 사자가 얼룩말의 숨통을 일격에 끊어야 하는 것과 같다. 어설프게 물면 결국 말의 뒷발에 얼굴을 얻어맞는다. 이인규는 사냥법을 모르는 엉성한 사자였다. 어쩌면 사냥 대상이 아닌데 사냥에 나선 것인지도 모른다.



 노 전 대통령이 소환된 건 2009년 4월 30일이었다. 그는 줄곧 “나 자신은 돈을 받지 않았고 가족이 받은 것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가 무죄의 뜻을 유서에 남기고 바위에서 뛰어내린 게 5월 23일이다. 중수부는 전직 대통령을 소환하고 한 달 가까이 지나도록 구속영장을 청구하지도 불구속으로 기소하지도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이 먼저 돈을 요청했다는 박연차 진술 말고는 아무런 증거도 대지 못했다. 박연차 진술은 완벽한 무기가 아니다. 실제로 나중에 다른 이들의 재판에서 여러 번 나가떨어지지 않았는가. 중수부의 검법은 수련생 수준이었다. 로마 검투사라면 이런 검법으론 경기장에 나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검찰을 대표했다가 패장이 됐으면, 은둔과 자숙의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검찰에 그래도 검투사의 혼(魂)이 남아 있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남길 것이다. 그런데 이인규 부장은 사퇴(7월 7일) 2개월 만에 법무법인 활동을 시작했다. 무리한 수사에 영향을 받아 전직 국가원수가 자살했는데 그를 몰아쳤던 검사는 두 달 만에 세속의 무대에 당당하게 복귀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근거도 없는 가벼운 언행으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노무현 차명계좌설에 대해 그는 “틀린 것도 맞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여야가 청문회 증인 출석을 막았다고 주장하더니 정작 증인으로 채택돼서는 나오지도 않았다. 그러더니 이번엔 지금의 제1 야당 원내대표와 국회 법사위원장이 과거에 박연차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진술이 있다고 폭로했다.



 그가 지목한 두 사람이 돈을 받았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그건 그것대로 진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게 한국 사회를 어지럽히는 ‘이인규 사태’의 본질은 아니다. 사태의 본질은 패장이 패장답지 못해 검찰 위신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고위공직 수행자’에 대한 국민 신뢰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검찰을 대표해 최고의 검법으로 최고위급 결투를 벌이는 검사, 패하면 깨끗한 퇴장으로 죄과를 갚으려는 검사…그런 기개 있는 검사는 어디에 있는가.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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