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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대만 반한감정

중앙일보 2010.11.22 00:07 종합 39면 지면보기








1992년 8월 24일 서울 명동의 중화민국 대사관에선 국기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의 마지막 하강식이 열렸다. ‘삼민주의…대동단결로 나아가세’로 시작하는 국가는 화교들의 복받치는 흐느낌 속에 묻혀 버렸다. ‘은혜를 잊고 의리를 저버렸다’며 한국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은 노태우 정부 시절 한국이 중국과 공식 수교하는 동시에 대만(중화민국)과의 단교를 선언한 날이었다. 대만과의 모든 정부 간 협정이 폐기됐고, 항공기·선박의 운항도 중단됐다. 당시 한국에는 명동·북창동·회현동 일대를 중심으로 1만8000명의 화교가 살고 있었다. 구(舊)한말인 1882년 청군을 따라와 정착한 화교가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지 110년 되던 해에 한국에게서 버림받은 것이다. 그로부터 6개월 뒤인 93년 2월 명동의 옛 대만대사관에는 중국의 오성홍기(五星紅旗)가 게양됐다.



 냉전 시절 분단국가이자 반공국가로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눴던 대만에 한국의 중국 수교는 ‘배신’이었다. 국내에서도 대만에 대한 연민과 자책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돼 가는 시점에서 과거의 의리에 연연할 수 없던 한국의 처지를 대만은 이해해줬다. 대만의 한국대사관 앞에서 태극기를 불태우고 계란을 투척하기도 했으나 반한(反韓)정서는 미미했다.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지금 한국은 대만의 5대 교역국이다. 2000년대 초반부턴 대만에서도 드라마를 시작으로 한류(韓流) 바람이 불었다. 요즘 한국 가수의 노래를 쉽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대만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종목에서 사상 최초로 금메달 2개를 따면서 태권도의 인기까지 더해졌다.



 단교 때도 인내하던 대만인들이 엉뚱한 데서 반한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태권도에서 자국 선수의 실격 사건을 두고서다. 태극기를 불태우는 장면이 보도되고, 한국제품 불매운동으로 치달을 조짐마저 보인다. “중국이 한국과 짜고 대만의 금메달을 훔쳐갔다”는 등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판치고 있으니 억울하다. 결백을 호소해 봐야 격분한 대만인에겐 쇠 귀에 경 읽기 상황이다.



 우리로선 대만을 섭섭하게 한 건 없는지 추슬러 볼 일이다. 일본에서 ‘혐한(嫌韓)’이란 용어가 나온 지 오래다. 그렇더라도 예의는 서로가 지켜줘야 한다. 중국식 표현을 빌리자면 예상왕래(禮尙往來)가 있어야 하는 법임을 대만인은 알아야 한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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