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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40>정은숙의 귀환

중앙선데이 2010.11.20 23:46 193호 5면 지면보기
그녀가 돌아온다. 전 국립오페라단 단장이었던 정은숙(64)씨 얘기다. 경기도 최고의 공연장인 성남아트센터 신임 사장에 오를 예정이다. 성남문화재단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추대받았다. 성남시의회 임명 동의안 절차(22일)가 남았지만, 민주당이 다수당인 것을 감안하면 통과는 거의 확실하다. 예술의전당 화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한 지 2년8개월 만의 화려한 컴백이다.

지방 공연장 대표 한 명 바뀌는 게 뭐 대수냐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씨 복귀가 가지는 정치적 함의는 간단치 않다. 정은숙이 어떤 인물인가. 그는 2002년 국립오페라단장에 처음 임명됐다. 이후 3년 임기의 단장을 두 차례 더 했다.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국립 예술기관의 장(長) 자리를 세 번 연속 한다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정씨의 재임 기간은 DJ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가로지른다. MB 정권이 탄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진 사퇴했지만, 정씨의 과거 이력으로 보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행적으로 보나 정씨가 임기를 다 채우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더 눈여겨 볼 사안이 있다. 집안이다. 정씨는 고(故) 문익환 목사의 며느리요, 영화배우 문성근씨의 형수다. 이 대목에서 노무현 정권 시절 문화부가 왜 그토록 국립오페라단을 열심히 지원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정도 이력에, 이 정도 배경이면 정씨는 좌파 혹은 진보 예술계의 상징적 인물이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길. 정씨가 단체장으로서 영 형편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니. 과거 예술가 출신의 기관장들이 제자나 지인, 즉 자기 식구 챙기기에 급급했던 것과 달리 성악가 정은숙은 국립오페라단장 재임 시절 실력 있는 해외파를 과감히 기용했고, 국내 오페라 제작 시스템을 선진국 수준까지 끌어올렸으며, ‘투란도트’ ‘라 트라비아타’ 등 안정적인 레퍼토리를 구축했다. 무엇보다 저 높은 곳에만 있는 줄 알았던 오페라를 대중 곁으로 다가가게 만들었다. 정은숙 단장의 성과다.

하지만 이런 업적, 다소 측정하기도 어렵고 애매하지 않은가. 반면 그가 문성근의 형수라는 건, 노무현 정권 때 잘나갔다는 건, MB정권이 들어서고 쫓겨났다가 지방 권력이 바뀌자 곧바로 복귀했다는 건 팩트(fact)다. 무엇이 더 설득력을 갖겠는가.
베르트람 뮐러(64)라는 사람이 있다. 유럽의 대표 무용전용극장인 독일 뒤셀도르프 탄츠하우스의 예술감독이다. 15년 넘게 해 오고 있다. 그의 재임 기간 정부의 보조금도 끊기지 않았다. 비결이 뭐냐고 묻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정치색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특정 이념을 표방하다, 그 이념과 다른 정권이 들어오면 업무가 껄끄럽지 않겠는가. 정치적 중립성은 예술기관 그리고 기관장의 절대 덕목이다.”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치색을 띠질 않고선 아예 기관장이 될 기회조차 없는 우리에게 이런 공자님 말씀은 참 공허할 따름이다.정은숙씨의 복귀를 보며 우파 혹은 보수 예술인들은 ‘이러다 정권마저 뺏기면 정말 큰일 나겠네’라며 가슴을 쓸어내릴 게다. 그러면서 더 단결하고 더 줄을 설 것이다. 어떡하든 보수 정권의 재창출을 위해 뛸 것이다. 반대 진영의 움직임 역시 비슷할 게다. 이런 치열한 현실 앞에서 “예술의 독립성” 운운은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대한민국에서 예술이란, 예술가란, 정치 권력의 부침(浮沈)에만 목매고 있는 수준이다.



최민우씨는 중앙일보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다. '성역은 없다'는 모토를 갖고 공연 현장 구석구석을 헤집고 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더 뮤지컬 어워즈’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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