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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객원기자 이혜영의 ‘현장’

중앙일보 2010.11.20 00:22 주말섹션 4면 지면보기
한국 대중은 그를 통해 시(詩) 하나와 친숙해졌다. 1978년 동양방송(TBC) ‘해변가요제’로 방송 데뷔를 한, 배철수(57). 데뷔 무대에서 그가 부른 노래가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다. 동명(同名)의 김소월 시를 가사로 삼은 노래였다. 그는 80년대 내내 로커(rocker)로 세상의 인기를 누렸다. 그러고선 1990년 문득 가수 생활을 접었다. 그의 이름을 딴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면서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배철수씨는 책을 내고, 음반도 만들었다. 영화배우이며 의 객원기자인 이혜영(전 SBS 앵커)씨가 15일 밤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는 유년시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가 겪은 음악인생과 고락(苦樂)을 두 시간 가까이 들었다.


“믹 재거와 에릭 클랩턴 보세요 성실하니까 그 나이에 음악하죠”













정리=성시윤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과 거











이혜영(이하 혜)=기타는 언제부터 치셨죠



배철수(이하 철)=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쳤어요. 그땐 기타 못 치는 사람은 간첩이라는 말이 돌던 때잖아요.



혜= ‘직업으로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철=‘음악은 선택받은 사람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음악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해 봤었어요. 집안이 어려웠으니까.



혜=어느 정도로 어려웠나요.



철=제가 정확히 일곱 살이던 때에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셔서 그 후로 쭉 재기를 못 하셨어요. 중학교 때인가, 서울 보문동에 있는, 아버지 친구 댁에서 저희 가족이 신세를 지며 살았어요. 그 집도 판잣집이었는데, 방이 없어서 우리 네 식구는 쪽마루에서 잠을 잤어요. 아침에 삼립빵 하나 먹고, 학교 가서 점심은 항상 굶었죠. 오죽하면 그때 ‘내일 아침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겠어요.



혜=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이 있으셨나요.



철=진짜 좋은 분이셨는데, 책임감이 좀 없으셨어요. 제가 중학교 졸업하고서 고등학교는 안 가려고 했어요. 친구들한테도 ‘나는 공장 가서 기술 배울 테니 나중에 만나자”고 얘기도 했죠. 아버지께 “고등학교 안 가겠습니다” 했어요. 저는, 아버지가 그래도 말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무 말씀 안 하시더라고요. 아무튼 제가 고등학교 가고, 대학도 갔으니까 됐죠.



혜=항공대를 나오셨죠. 거길 선택한 이유는.



철=국립이었으니까요. 등록금 없고, 공짜로 책도 주고, 교복도 주고 하니까요. 국비로 대학 다닌 거죠. 그런데 (제가) 국가에 공헌한 게 없네.



혜=항공대 대학밴드 ‘활주로’로 활동하면서 1978년에 TBC 해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에서 수상을 했죠.



철=77년 군대에서 고참 할 때에 TV를 보는데, 제1회 대학가요제를 하는 거예요. 제가 보니까, 별로 잘하지도 못하는 팀이 많더라고요. 그때 샌드 페블스가 대상을 받았잖아요. 그 친구들한테 농담 삼아 얘기했는데 “너희들이 1회 때 하는 거 보고, 저거보단 (우리가) 낫겠다 싶어 가요제 나갔다”고요.



혜=해변가요제 때는 드럼을 치셨죠.



철=화장실에서 우연히 중앙일보를 봤는데, 해변가요제 신청 마감이 이틀인가 남았더라고요. 그날 학교 가서 후배들을 모았죠. 드럼 치던 애는 학군장교 훈련 받으러 가서 학교에 없고, 1학년 애는 드럼을 너무 못 치고 해서, 제가 어쩔 수 없이 드럼을 쳤죠.



혜=대학 졸업 후에도 계속 음악을 할 생각이었나요.



철=그때의 우선 과제는 학교 졸업하고,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어요. 저는 학과 추천 받아서 원서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직장이 있었어요. 동생과 같은 해에 대학 졸업을 했는데, 그 친구가 먼저 TBC에 붙었어요. 그래서 동생더러 “네가 직장에 붙었으니, 내가 음악하다 망해도 네가 집안을 먹여 살려라. 나는 리스크가 크긴 하지만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죠. 동생이 흔쾌히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더군요. 제가 동생을 잘 만난 거죠. (배철수씨 동생은 SBS의 배철호 제작본부장이다)



혜=30대 중반에 음악캠프 DJ를 하기 전까지는 ‘자유로운 로커’였겠네요.



철=자유로울 줄 알고 밴드 했는데, 80년대에 록밴드 한다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돈 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것이었어요. 우리가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한 마지막 세대예요. 90년대 이후로는 디스코클럽으로 바뀌었으니까. 현충일 하루만 쉬고, 매일 새벽까지 연주했어요. 좋아서 시작한 게 음악이었는데, 완벽히 ‘일’이 돼버리더라고요.



혜=갑자기 음악을 그만두셨죠.



철=1990년에 라디오 DJ를 우습게 시작하게 됐죠. 방송국에서 “해보겠느냐” 해서 그냥 “해보죠” 했어요. 그때가 ‘모여라’ 있는 송골매 9집 내던 때예요. DJ 끝나고 나면, 클럽 가서 연주하고, 그 다음 날 아침 레코드 회사 가서 판 녹음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DJ 몇 달 만에 ‘내가 음악하는 것보다 방송하는 게 낫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송하면서, 이전에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의 끌림, 에너지 이런 것들을 느꼈죠. 음악이 힘겹게 느껴질 때에 방송을 한 거죠. 지금도 라디오 스튜디오에 있으면 진짜 좋고, 너무 행복해요.



현 재











혜=연세가 50대 후반이시잖아요. 그룹 ‘활주로’ ‘송골매’ 할 때의 모습 그대로세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철=제 주변 사람들은 “훨씬 나아졌다”고 그래요. 그때는 제가 좀 거칠었죠.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송골매 할 때 제 사진을 보면 지금이랑 많이 달라요. 아주 강팍하고….



혜=청년의 모습이 그대로 있어요. 비결은요.



철=아, 칭찬이군요. 제가 젊은 친구들과 계속 소통을 하기 때문일 거예요. 보통 점심은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사이의, 젊은 PD나 작가들이랑 먹어요. 죽 그래 왔어요. 제 방송 청취자도 20, 30대이니까. 그 친구들이랑 얘기하면 세대 차이를 못 느끼겠더라고요.



혜=나이 든 사람은 좀 부담스러운가요. 거기서는 보스(boss)를 못 해서인가요.



철=제 또래는, 제가 관심 있는 것들에 대한 얘기를 잘 안 해요. 재테크나 자녀교육 얘기만 하지. 저는 거기에 별 관심이 없어요. 제가 개인주의자라서 그런지 제 일에 더 관심이 많아요. ‘요새 유행하는 음악이나 패션이 뭐냐’ 이런 거요. (제가) 철딱서니 없는 거죠.



혜=젊은 청취자들은 배철수씨가 예전에 유명한 가수였다는 것을 아나요?



철=청취자 중에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아저씨가 젊을 때에는 지금 동방신기만큼이나 인기가 높았다면서요”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저를 가수로 아는 사람은 나이 많이 먹은 거죠. 하하.



혜=머리카락이 은발(銀髮)이신데, 염색 안 하는 이유가 있나요.



철=저는 크게 젊게 보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안 해요. 노사연 같은 친구는 “오빠는 눈 밑의 지방만 제거하면 10년은 젊어 보일 텐데” 하는데, 그렇게 해서까지 젊게 보여야 할 필요가 저는 없어요. 제가 50대 후반인데, 누가 저를 80대로 본다면 모르지만, 그냥 제 나이로 보이지 않나요.



혜=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20년 하게 된 비결은.



철=그냥 하는 거죠, 뭐. 직장 생활을 정년까지 하는 사람을 보면 대체로 야심이 없는 경우가 많잖아요. 야심 있는 친구들은 큰 일을 도모하기 위해 중간에 (직장을) 나가니까. 제가 그런 경우인 거 같아요. 큰 욕심이 없어요. 좋게 보면 욕심이 없고, 나쁘게 보면 변화를 싫어하는 거죠.



혜=성실했기에 20년 동안 하게 된 것인가요.



철=‘성실하다’는 게 저랑 안 맞는 것 같은데, ‘성실하다’ 외에는 달리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20년 동안 프로그램 진행 시간에 지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까. 아파서 방송에 못 나오거나, 비나 눈 때문에 늦게 나온 적이 없어요.



혜=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록스타와 성실성이 어울리나요?



철=영국과 미국의 록스타를 보면, 성실한 사람이 지금까지 활동해요.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67)가 대표적이죠. 몇 년 전에 그가 찍은 사진 보고 제가 충격 받았어요. 맨살에 재킷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몸이 20대보다 더 좋더라고요.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고요. 체력 없으면 무대에 못 올라가거든요. 에릭 클랩턴도 마찬가지고요. 성실하지 않으면 음악을 못 해요. 제가 지금 무대에 올라가면 힘이 부쳐 세 곡도 못 할 거예요.



혜=20년 동안 매일 똑같은 것을 규칙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축복이네요.



철=축복일 수도 있고, 저주일 수도 있죠. 제가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대학 졸업 후에도 취직 안 하고 록밴드를 했잖아요. 얽매이기 싫어서요. 그런데 지금은 월급쟁이보다 더 규칙적으로 살잖아요. 제 운명이죠 뭐, 헤헤헤.



혜=방송 가족으로 유명하시더군요. 사모님이 MBC 라디오 부국장이시죠?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맡은 첫 PD셨다면서요.



철=팔불출(八不出)이라고 할까 봐 잘 안 하는 얘기인데요. 오늘날 제가 젊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됐다면, 그건 제 처 덕분이에요. 이 점은 분명히 얘기합니다. 아내와의 만남은, 제 인생에 진짜 도움이 되는 만남이었다고 생각해요. 제 처는 (저에 대해) 그렇게 얘기 안 할 수도 있지만….



혜=아드님을 둘 두셨죠. 어떤 아빠세요.



철=큰애는 고등 3학년, 그 밑에는 초등 6학년이에요. 저는 친구 같은 아빠는 아니에요. 야단칠 일 있으면 야단치고. 크게 간섭하는 편은 아니에요. 제 처도 마찬가지고요. 애들은 애들대로의 삶이 있잖아요.



미 래











혜=(잡지 하나를 꺼내서 배철수에게 보여주며) 여기에 이기 팝(Iggy Pop) 인터뷰가 나왔어요. 한창 활동하던 때의 몸매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더라고요. 여기 이 근육 좀 보세요(이기 팝은 1967~74년에 활동한 미국 펑크 록밴드 ‘스투지스’의 보컬이다. 현재 63세로 배철수 보다 여섯 살 많다).



철=(잡지를 들춰 보며) 이기 팝은 펑크 음악의 대부였는데…. 와, 진짜 열심히 운동하셨네.



혜=‘자유로운 로커’의 영혼에는 이런 것도 포함되나요. 배철수씨도 이런 화보 촬영 요청이 오면 찍을 수 있나요.



철=저는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해요. 이기 팝 같은 분들은 대단한 양반, 말 그대로 ‘전설’이고요. 저는 이렇게까지 운동할 시간이 없어요. 정열도 없고요. TV 프로그램(콘서트 7080) 진행도 하고 있지만, 저는 TV라는 매체를 별로 안 좋아해요. 꾸미고 나가는 게 싫어요. 의상 맞춰 입고, 메이크업 하고, 이런 것들이 귀찮아요. 저는 라디오가 좋아요.



혜=노래를 다시 할 계획은 없으세요.



철=사람이 자기 미래에 대해 확실하게 얘기하긴 참 어렵죠. 노래를 다시 하지 않을 확률

이 95%, 다시 할 확률이 5% 정도라 할까요. 얼마 전에 구창모씨랑 “우리도 곧 환갑인데,

환갑 기념으로 한번 공연하면 좋지 않을까”하고 농담한 적은 있어요. 사람들은 저더러‘지금이라도 기타 메고 무대 올라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다시 음악 하려면 몇 년은 준비를 해야 해요.



혜=저는 “자유로운 영혼을 갈망하는, 영원한 로커 배철수다” 이런 말을 기대했는데요.



철=제일 중요한 걸 얘기해야 해요. 제가 왜 음악으로 못 돌아가느냐 하면, 제가 음악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보다 지금처럼 DJ로서 줄 수 있는 게 더 크다고 보는 거죠.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청취자와 함께 레드 제플린, 이기 팝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청취자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막 떠오르고요.



 제가 초년 고생이 심했기 때문에, ‘이래서 삶이란 게 공평할 수도 있겠다’ 생각해요.‘제가 행복하다’는 게 불행한 사람들에게는 죄송 할 수도 있겠지만, 초년에 고생했으니 용납해 주겠죠.



혜=최근에 삶의 활력을 느끼게 된 것 있으면 세 가지만 꼽아 보세요.



철=제 생활이 너무 단순해 극적인 일은 생기지 않아요. 올해는 ‘음악캠프 20년’이라 뭔가 많이 일을 벌였죠. ‘배철수의 음악캠프 20년, 그리고 100장의 음반’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고, 골든마우스상을 받고, 최근 기념콘서트도 했죠. 이런 일련의 것들이 제겐 피곤했어요. 저는 일상이 좋아요. 아무것도 없는 일상이….



혜=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철=차를 몰고 여의도에 들어가는데, KBS 앞으로 단풍이 쫙 들어 있더라고요. ‘참 예쁘다’ 생각하면서도 ‘아, 내가 지금 저 단풍잎같겠구나’ 했어요. 나뭇잎이 푸른색일 때는 사람들이 안 쳐다봐요. 잎이 떨어지기 직전 붉게 빛날 때야 쳐다보게 되죠. 해도 서산에 물려 있을 때 제일 아름답잖아요. 그런데 서산을 넘어가면 그것으로 끝이죠.



 “한 프로그램을 20년 했다”고 사람들이 찬사를 보낼 때마다 ‘이제 정리할 때가 됐구나’싶어요. 20주년 기념 공개방송에서는 “사반세기는 해야죠. 30년 가볼까요”라고 하긴 했어요. 함께 방송하는 후배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잘 마무리를 해야겠죠.



 언제일지 모르지만 방송을 그만 두면, 진짜하고 싶었던 여행을 하고 싶고요. 행복한 소리일 수 있겠지만, 암스테르담 공원 벤치에서 베이글에 커피 먹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하고요.



혜=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지만 세상과 타협해야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철=무슨 일 하든지 간에 톱스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톱에 올라가는 사람은 어차

피 몇 명 안 되죠. 누구나 거기에 올라가려 하고, 그게 안 되면 ‘내가 실패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본인에게도, 사회적으로도 안 좋죠.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재미있게 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 아닌가요.



j 칵테일 >>젊은 사람 눈치 보지 말고 그 시절 그 노래 불러야죠



배철수는 중년들이 노래방에서 최신가요를 부르는 것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40, 50대가 즐길 문화가 없잖아요. 젊은이들 위주로 모든 문화가 굴러가는 것 같고. 그런데 40, 50대들이 제대로 혀도 안 돌아가는데, 직장의 젊은 사람들한테 잘 보이려고 젊은 노래 불러야 하는 것, 저는 반대합니다. 우리 때 노래를 불러야죠.”



 배철수 자신이 부른 노래는 요즘도 이따금 라디오 방송을 탄다. “비 오면 ‘빗물’(1983년)이 가끔 나오고요. ‘모여라’(1990년)도 자주 나오는 것 같대요. 솔로앨범에 들어 있는 ‘사랑 그 아름답고 소중한 얘기들’(1985년)도 가끔 나오고요. 저로서는 그 노래들이 나오는 게 신기하죠. 아마도 제가 계속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청취자들이 기억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는 실제로는 노래를 부른 지 한참 됐다고 했다. 노래방에 가본 지도 수년 됐다. “‘콘서트 7080’ 시작할 때(2004년) PD·작가들이 끝끝내 ‘가자’고 해서 간 게 마지막이었어요. 제가 ‘마이웨이’를 불렀더니 성질을 내면서 딴짓들 하고 노래도 안 듣던데요. 오랫동안 노래를 안 했으니 노래가 안 되더라고요.”



>> 송창식우리는은 교과서 실려야 …









위부터 김세환, 윤형주, 송창식.



배철수는 1978년 TBC 해변가요제로 방송에 데뷔해 90년 그룹 송골매가 해체하기까지 10여 년간 록음악을 연주했다. 그리고 90년 이후 현재까지 하루 평균 15곡의 팝음악을 청취자에게 들려주고 있다. ‘음악 인생’을 30년 넘게 살아온 셈이다.



 그는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의 비틀스,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블랙 사바스가 연주한 음악이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올해 ‘음악캠프 20주년’을 기념해 펴낸 책에서 그는 ‘100대 명반’을 선정했다. 그중에서 그가 최고로 꼽는 음반은 무엇일까.



 “100장을 뽑기도 진짜 어려웠어요. 2, 3개월 걸렸죠. 그런데 그중에서 한 장 뽑기는 진짜 어렵죠. 제일 인상적인 앨범은 딥 퍼플의 ‘머신 헤드’(1972년)예요. 그게 제가 돈 내고 산 최초의 앨범이에요. 전축도 없는데 샀다니까요. 말 다했죠.”



 국내 가요계에서는 신중현, 김민기, 송창식, 한대수의 음악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송창식 선배의 음악이 진짜 최고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같은 노래는 사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야 해요.”



 그런데 갑자기 교과서라니.



 2008년 ‘푸른미디어상 언어상’ ‘아름다운 방송언어상’을 수상한 그의 내력에서 ‘교과서’ 운운이 이해가 간다. 그는 20년간 라디오방송을 하면서 방송 중의 언어 때문에 심의를 받거나 물의를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다.



 “팝음악은 60·70년대, 국내 가요는 70·80년대가 최고예요. 가사의 깊이로 보나, 뭘로 보나 지금의 가요는 경박한 느낌이 있는 게 사실이잖아요. 멜로디랑 가사랑 같이 나와서 그렇지, 가사만 써놓고 보면 진짜 유치해요. 그런데 옛날 노래 가사 보세요. 젊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얘기해 줘야 해요. 지금이 우리 젊었을 때보다 풍요로울지 모르지만, 우리 때에는 이렇게 좋은 문화가 있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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