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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상대를 생각하는 승부여야 길하다

중앙일보 2010.11.20 00:12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아시안게임에서 유도의 왕기춘 선수가 보여준 스포츠맨십이 화젭니다. 상대 선수의 부상 부위를 공격하지 않고도 시종 우세한 경기를 벌이다 막판 역습을 당해 아깝게 패했지요. 그러고도 아무 말 않고 있었는데 금메달을 딴 일본 선수가 나중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해 알려졌습니다. 참 장하고 늠름합니다. 일본 선수 말마따나 상대의 부상을 이용하고 싶었을 텐데, 그런 유혹을 물리쳤으니 말이지요.



 달리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승부에서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게 뭐가 나쁘냐는 거지요. 하지만 스포츠는 전쟁이 아닙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겨야 하는 전쟁과 달리 스포츠에는 페어플레이라는 게 있고, 아름다운 패배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 승부가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이 한번 경기하고 마는 거 아니잖아요. 경기가 끝나고 상대편과 악수를 하고 옷을 바꿔 입을 수 있는 것도 그래섭니다. 부상 부위를 집중 공략해서 자칫 상대의 선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짓은 서로 피하는 게 곧 스포츠인 겁니다.



 스포츠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모두 그렇습니다. 삶이란 곧 승부의 연속이니까요. 그 원리는 『주역(周易)』에 잘 설명돼 있습니다. 『주역』은 흔히 생각하듯 점 보는 책만이 아닙니다. 인간사의 진리가 담긴 지혜서지요. 한번 펼쳐볼까요.



 주역 64괘(卦) 중 8괘 ‘비(比)’ 편을 보면 됩니다. ‘比’란 견주는 거 아닙니까. 바로 경쟁이자 승부지요. 주역은 그 비를 길(吉)하다고 풉니다. 인간이건 사회건 경쟁이 없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인류의 문명이란 결국 끊임없는 경쟁의 결과인 겁니다. 그러니 경쟁이 길하지 않을 수 없지요.



 하지만 모든 경쟁이 다 그런 건 아닙니다. 정당하고 공정해야 합니다. 주역은 이를 녕(寧)이라 이릅니다. 정당하고 공정해야만 게임의 참가자들이 서로 편안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불녕방래(不寧方來), 즉 경쟁에 있어 편안함이 있지 못하면, 후에 승리자가 된다(夫) 하더라도 결국 흉(凶)하다고경고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온 일 아닌가요. 온갖 소소한 편법과 탈법, 불법을 이용해 승리를 쟁취한 것 같았지만 끝내 그것이 꼬투리가 돼 파멸에 이른 사례들 말이지요.



 그렇다면 정당하고 공정하게 이기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주역은 앞서 말했듯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먼저 꼽습니다. 종래유타(終來有它)란 승부가 끝나고 나면 상대와 다시 하나가 돼야 함을 말합니다. 전쟁에서처럼 패자의 모든 것을 전리품으로 빼앗는 게 아니지요.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겁니다. 더불어 살아야 할 상대와의 승부에서 상대를 초토화시킬 수는 없겠지요. 결국 ‘너 죽고 나 살자’는 극한경쟁이 아니라 상생(相生)을 추구하는 선의의 경쟁이 돼야 길하다는 뜻입니다.



 이어 주역은 비지자내(比之自內), 즉 경쟁은 자기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먼저 이겨야 한다는 말이지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지요. 남을 공격하기에 앞서 자기 스스로를 먼저 담금질하고 강하게 무장시켜야 승리하는 데 길한 겁니다.



 궁극적으로 주역은 비지비인(比之匪人), 즉 경쟁이란 사람의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경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승패의 결과는 곧 신의 섭리이며 자연의 질서에 따른 것이라는 겁니다. 거기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이 나오는 겁니다. 최선을 다해 승부에 임하고, 결과가 어쨌든 깨끗하게 승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길한 것이지요. 아까도 말했지만 인생의 승부는 한판으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지금까지 돌팔이 점쟁이의 시답잖은 해석이었습니다만, 우리 사회에서 이런 자명한 원리를 거스르다 흉한 꼴 당하고 마는 예가 눈 무르고 귀 닳도록 많은 걸 봐도 과히 그릇된 건 아닐 겁니다. 한 가지 더 분명한 게 있습니다. 큰 승부(顯比)일수록 더욱더 주역이 경계하는 도리를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길하고 흉한 파장도 따라 크고 치명적일 테니까요. 그래서 주역도 한 줄 더 보태고 있습니다. 어진 임금은 사냥을 하면서 삼면을 몰아가되 한 방향은 터놓는다(王用三驅)는 겁니다. 그래서 눈앞의 사냥감을 잃지만(失前禽) 몰이꾼으로 동원된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邑人不誡). 그렇게 어진 경쟁이기에 길한 겁니다. 자신에게만 길한 게 아니라 그를 믿고 따르는 백성들에게도 길한 것입니다. 백성들의 지지가 거기서 나옵니다.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겁니다. 나중에 출세할 때를 위해 꼭 기억해 두십시오.



이훈범 중앙일보 j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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