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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외규장각 도서 반환 합의 흔들려선 안 돼

중앙일보 2010.11.20 00:11 종합 38면 지면보기
도서관에 있는 문헌자료의 1차적 관리 책임자는 사서(司書)다. 사서는 각종 장서(藏書)와 서지(書誌)의 수집과 평가·선택·분류·보관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보유하고 있는 문헌자료에 애착을 갖는 것은 사서로서 당연한 태도일 것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BNF) 사서들이 외규장각 도서를 대여 형식으로 한국에 돌려주기로 한 결정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직업적 자세는 평가할 만하지만 국가 간 합의로 이미 정리가 끝난 문제에 뒤늦게 시비를 거는 것은 월권(越權)일뿐더러 무의미한 일이다. BNF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 297권의 한국행은 두 주권국가 최고지도자의 정치적 합의로 이미 ‘기정사실(fait accompli)’이 됐음은 공지(公知)의 사실이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 서고(書庫)에서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 문제는 한·불 관계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반환 약속에도 불구하고 협상은 진전을 보지 못했다. 마침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최근 방한을 계기로 양국 정상은 ‘5년 단위 갱신 대여’에 합의함으로써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었다. 국가 문화재의 양도를 금지한 프랑스 국내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실질적인 반환 효과를 내는 방식으로 앓던 이를 뽑아버린 것이다. 명분과 실리를 절충한 타협책이다.



 BNF 사서 11명은 프랑스 신문에 게재한 성명서에서 5년 단위로 대여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사실상의 ‘반환’으로 프랑스 국내법 위반이며, 다른 나라들의 문화재 반환 요구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양국 협상팀이 고민해온 것도 바로 이 문제다. 한국 측이 ‘영구대여’나 ‘자동갱신’이란 표현을 양보하고, ‘이번 합의는 어떤 경우에도 선례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합의문에 포함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빼앗긴 것을 돌려받으면서 대여 형식을 취하는 건 말도 안 된다는 반발이 한국 내에 있음을 BNF 사서들은 알아야 한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은 되돌릴 수 없는 국가 간 합의임을 직시하고, 원활한 업무협조를 통해 반환 절차를 조속히 매듭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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