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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중남미 대통령들의 색다른 리더십

중앙일보 2010.11.20 00:11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좌파 도미노


‘좌파에서 실용주의로’ 변신의 천재, 룰라·가르시아







브라질의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왼쪽)과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우마 호세프. 오른쪽 사진은 최근 방한해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페루의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



21세기에 좌파 붐이라니? 유럽에서도 인기가 없는데, 뒤늦게 중남미에 좌파 정권들이 우후죽순처럼 탄생했다. 2000년대에 시작된 좌파 도미노는 1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남미 대륙에는 콜롬비아와 칠레를 제외하곤 모두 핑크빛이다. 중미에는 멕시코, 파나마, 온두라스를 제외한 나머지가 핑크빛이다. 대부분의 정권이 재선과 정권 재창출에 성공해 드라마를 이어나간다. 얼마 전에 브라질 대선에서 지우마 호세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룰라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것이다.



 왜 좌파가 계속 정치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가? 단초는 1990년대 우파의 개혁정치가 남긴 후유증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안정화와 구조조정이란 눈물 계곡을 지나면 빵과 우유를 얻었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과격한 시장개혁과 개방으로 실업자가 양산되었고, 경제는 저성장에 허덕였다. 민영화 매각 대금에도 불구하고 외채는 늘어만 갔다. 이에 국민들은 거부의 표를 던졌고, 좌파에 기회를 주었다.



 좌파 정부들은 운이 좋았다. 이들이 집권한 2000년대 와서 대부분의 국가는 4~5% 수준의 안정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 30년간 볼 수 없는 기록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은 중국 덕분이었다. 원자재와 농수산물 수출이 늘어났고, 가격 상승의 혜택도 누렸다. 재정에 여유가 생겼고, 외환보유액도 늘어났다. 여유 재원은 곧 빈곤층 감축과 복지 확충에 투입됐고, 내수시장도 커졌다. 당연히 재선 투표 때에 지지표가 결집됐다. 이제 성장과 재집권의 선순환 사이클이 작동했다.



 중남미 정치인들도 이제 스스로 좌파라고 칭하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스페인 살라망카 대학이 1994년부터 2008년까지 18개국의 의회 정치인을 면접조사한 결과를 보자. 좌파를 1점, 중도파를 5점, 우파를 10점으로 주고,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게 했다. 놀랍게도 14개국에는 상당한 정치세력이 중도파에서 좌파 사이에 포진했다. 2008년 8월 기준으로 14개국에서 중도파-좌파 세력은 집권을 했거나 집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중도파-우파 지형을 가진 나라는 온두라스, 파나마, 파라과이, 도미니카공화국 네 나라에 국한됐다. 1990년대와 달리 그만큼 이념적 지형이 바뀐 것이다.



 좌파 대통령들의 변신



 1930년대 이래 좌파 세력들은 민중주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소외된 중하층과 내수 기업가들을 묶어 집권을 꾀했다. 수입대체산업화와 반제(反帝) 슬로건이 주된 무기였다. 하지만 이 전략은 1960년대에 와서 인기를 잃었다. 1959년 쿠바혁명 이후 군부독재 시대가 되자 게릴라 전략이 성행했다. 농촌 지역은 물론, 도시에도 게릴라 세력이 출몰했다. 하지만 대중은 동조하지 않았다. 1980년대 민주화 시대가 시작되자 극좌파는 소총을 내리고 합법적 공간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선거 지지도는 형편이 없었다.



 1989년 좌파 세력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보았고, 1990년대에 들어와서 몰아닥친 세계화의 물결을 감내해야 했다. 이제 국유화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 시장질서 속에서 권력을 민주화하는 프로젝트로 조용히 이동했다. 좌파는 사회민주주의 강령을 수용했다. 다만 유럽과 달리 노조가 허약한 것이 문제였다. 좌파가 ‘카푸치노 사회주의’로 바뀌는 과정은 브라질의 룰라와 노동자당, 칠레의 사회당, 우루과이의 확대전선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좌파도 선거정치에 들어오면 변신을 해야 한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도파를 흡수해야 한다. 자연스레 정당 강령도 ‘중위투표자 모델’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청바지 입고 ‘사회주의’를 외치던 털북숭이 룰라를 브라질 유권자들은 세 번이나 거부했다. 네 번째 도전에서 그는 수염을 깎고 아르마니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슬로건도 “귀여운 룰라, 평화와 사랑”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당선되었다.



 집권한 다음의 고민은 국가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미 지방정부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좌파 세력이었다. 운영의 주체가 되면 이념보다 경영과 관리기법에 골몰한다. 이제 이념은 실용주의에 자리를 내준다. 민중주의 시대가 준 교훈도 있었다. 재정지출은 수입의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했다. 만약 사회복지를 확충하려면 국가는 생산과 수출에 열심히 노력해 세수를 늘려야 했다. 좌파나 중도좌파도 모두 성장과 국가경쟁력의 사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 붐의 효과



 집권좌파엔 행운도 따랐다. 중국의 고도성장은 엄청난 원자재와 에너지 수요를 불러왔다. 2000년에 들어와서 철광석, 구리, 대두, 석유에 대한 수요는 급증했다. 심지어 2009년 경제위기에도 크게 줄지 않았다. 자원부국들은 로또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차이나 달러’에 취했다. 중국의 투자와 금융지원도 좌파 정부의 구미 의존성을 줄였다. 자연스레 경제는 높은 성장률과 안정을 회복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좌파 대통령은 실용주의자다. 어떻게 보면 변신의 천재들이다. 룰라는 강성 이미지의 노동자 정치가에서 부드러운 협상가로 변신했다. 사실 룰라와 전임자 카르도주 사이에 이념과 정책의 격차는 아주 작다. 페루의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도 변신했다. 그가 집권했던 1985년에는 강성 민중주의자였다. 그가 소속된 아프라당은 반제 민중주의를 내건 중도좌파 정당이었다. 2006년 두 번째 집권 이후, 그는 자신과 당의 노선을 완전히 바꾸었다. 개혁과 개방의 전도사가 된 것이다. 페루 경제는 이제 중국 붐에 편승해 경이로운 7~8%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성형 교수 서울대 라틴아메리카 연구소



베네수엘라에선 여전히 ‘21세기 사회주의’ 담론이 튀어나온다. 이때 사회주의란 말은 ‘국유화와 민중적 통제’보다는 ‘사회정의’에 가까운 개념이다. 차베스는 과두제 세력과 중상층이 석유 수입을 독식하던 과거사에 대한 불만을 정치적으로 동원해 지난 10년간 권좌를 유지했다. 국민의 70% 이상이 시장경제를 신봉하기 때문에 전면적인 국유화 경제로 이행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차베스의 게임은 결국 ‘재분배 정치’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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