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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귀순 용사

중앙일보 2010.11.20 00:09 종합 39면 지면보기








1983년 5월 5일, 어린이날 오후 2시. 느닷없이 방공 사이렌이 울렸다. 워낙 잦은 민방위훈련에 익숙해 있던 시민들은 대부분 그러려니 했지만 이 상황은 훈련이 아니었다. ‘중공 민항기’가 무장 괴한들에 의해 납치돼 불시착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 정부는 난생 처음 ‘두 개의 중국’을 피부로 느꼈다. 승객들의 송환이야 당연한 일이었지만 줘창런(卓長仁)을 비롯한 여섯 납치범을 어디로 보낼지는 골치 아픈 문제였다. 중국은 “범죄자 인도”를, 대만은 “정치적 망명”을 주장했고, 고심하던 한국 정부는 이들을 1년간 구속 수감한 뒤 대만으로 추방했다. 대만 정부는 이들은 ‘6의사’라고 부르며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세월이 흘러 사건이 잊혀져 갈 무렵, 왕년의 영웅들이 대만에서 살인사건으로 법정에 섰다는 보도가 신문 한 구석에 단신으로 등장했다. 민항기 납치의 주범이었던 줘창런과 장훙쥔(姜洪軍) 등이 1991년 한 부동산업자를 납치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이들은 대만 돈 50만 위안(元)의 몸값을 뜯어낸 뒤 인질을 살해하고 시체를 야산에 버렸다.



 에드워드 미콜러스와 수전 시먼스의 연구서 ‘테러리즘, 1992~95’에 따르면 줘창런 등은 전형적인 적응 실패자였다. 사업 실패로 거액의 포상금을 모두 날린 이들은 문제의 부동산업자에게도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범행이 “대만의 불합리한 사회 제도에 맞선 의거”라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2001년 사형이 집행됐다. 이 사건은 ‘귀순자’에 대한 대만 여론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최근 남한 거주 탈북자가 2만 명을 넘었다. ‘자유를 찾아 남하한’ 귀순 용사가 영웅이 되던 시절은 이미 지났어도 그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10일 발간된 ‘2010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탈북자의 98.5%는 북한에서 ‘이것도 인간의 삶인가’ 하는 비참한 심경으로 탈출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 중 54.4%가 생활보호 대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굳이 한반도의 미래 상황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한 핏줄의 동포로서, 같은 인간으로서 탈북자들의 적응과 생존을 돕는 노력은 좀 더 필요해 보인다. 남한 사회마저 그들을 외면한다면 ‘줘창런의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송원섭 JES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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