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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세인트루이스에서 보스니아와 한반도를 생각한다

중앙일보 2010.11.20 00:09 종합 39면 지면보기






강규형
명지대 교수·진실화해위원회 위원




며칠 전 미국의 국제지역학회(ISA) 중서부회의가 열린 세인트루이스(미주리주)는 인구 35만 명의 작은 도시지만 여러모로 의미 있는 곳이다.



1804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명령으로 루이스와 클라크(Lewis&Clark)가 탐험대를 이끌고 2년여의 역사적인 서부탐험을 떠난 지역으로, 서부와 중서부, 북부와 남부를 가르는 미국의 한복판에 위치한 곳이다. 그래서 높이 192m의 서부로의 ‘관문 아치(Gateway Arch)’가 이 지역 명물이다. 이미 1904년 엑스포가 열린 곳이고, 월드시리즈 10회 우승(역대 우승 횟수 2위)에 빛나는 명문 야구구단 카디널스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런데 너무나도 미국적인 이 중소도시에 놀랍게도 7만 명의 보스니아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 보스니아 이외 지역에선 세계 최대 규모다. 보스니아 인구는 약 435만 명이었는데 60만 명이 미국으로 이주했고, 그중 7만 명의 보스니아 무슬림(이슬람인)이 여기에 정착했다. 올해 ISA회의의 가장 주목받은 행사도 세인트루이스 소재 폰본대학교가 2006년부터 수행하는 ‘보스니아 기억 프로젝트(The Bosnia Memory Project, 보스니아 학살에 대한 자료수집 작업)’가 주관한 ‘프리예도르: 보스니아 학살의 삶’이었다. 프리예도르는 학살이 자행된 보스니아 북서부의 도시이고, 세인트루이스 이주자의 대다수가 이 지역 출신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라는 긴 정식 명칭을 가진 보스니아는 옛 유고연방의 일부였고, 분쟁으로 점철된 역사를 갖고 있다. 수도 사라예보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격발시킨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이 일어난 유럽의 화약고였다.



 필자를 포함한 한국의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들은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벤저민 무어 교수에게 그들 작업에 참고가 될 자료를 전달했다. 참고로, 국제 유고전범재판소(ICTY,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옛 유고슬라비아연방(주로 보스니아 내전)에서 일어난 반인륜범죄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냉전시대에 유고는 티토의 영도하에 잠정적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 자동차를 자체 생산하는 등 산업발전도 어느 정도 이뤄냈고, 비동맹 세계의 리더로서 국제사회에서 존중받았다. 유고 특유의 노동자 자주관리제도는 혁신적인 노동체제로 주목받았다. 어떤 이들은 유고를 ‘문명국가’의 살아있는 교범으로 ‘인류의 대안’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사라예보는 1984년 겨울올림픽을 개최했고, 이에리사와 정현숙이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구기 종목 금메달을 딴 세계탁구선수권대회(73년)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무너진 후 잠재적 갈등이 폭발하면서 ‘유고내전’이라는 20세기 말 인류 최대의 참극이 일어났고, 그 결과 유고연방은 여러 나라로 갈라졌다.



 ‘민족갈등’이니 ‘인종청소’니 하는 얘기가 횡행하는 이 지역의 복잡한 민족구성과 역사를 일반인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유고 주민들은 알바니아계 등 몇몇 소수인종을 빼고는, 사실상 다 같은 남(南)슬라브(유고슬라브)인이며 같은 언어인 세르보-크로아티아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주민들이 서로 다른 문명권을 택하면서 다른 민족으로 변해 버렸다.



 예를 들어 보스니아에서는 보스니아 무슬림(44%), 동방정교 세르비아인(약33%) 가톨릭 크로아티아인(약17%)이 뒤섞여 사는데 여기서 가장 참혹한 상호학살이 일어났다. 문명세계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고, 또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산 증거였다.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 개입에 따른 데이턴협정(95년 11월)으로 가까스로 강제적인 평화가 찾아왔지만 아직도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유고내전을 보면 자연스레 한반도의 미래가 걱정된다. 물론 유고에서는 이질화 과정이 수세기 동안 진행됐지만 한반도에선 수십 년간 진행됐고, 종교분쟁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큰 차이도 있다(김일성교를 종교로 간주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긴 하다). 그러나 같은 지역에서 같은 언어를 쓰는 근본적으로 같은 민족이 다른 문명을 택하면서 다른 민족처럼 변해간 과정은 분명 남북한에도 적용되는 아날로지이다. 남북한 간의 작금의 문명적 차이는 분명 우려할 만큼 큰 괴리감을 동반한다. 이질화된 문명권의 갈등이 낳을 수 있는 분쟁, 그리고 거기서 발생할 수도 있는 난민 사태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앞으로 엄청난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진실화해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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