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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인종차별 공격 ? 세 치 혀로 씹어버리죠”

중앙일보 2010.11.20 00:08 주말섹션 2면 지면보기



WP “아웃사이더의 수호성인” NYT “명석한 코미디언” … 마거릿 조 “주류 사회 승인엔 관심 없다”





올 5월 아시안아메리칸들의 최대 포털사이트인 goldsea.com은 한국계 코미디언 마거릿 조( 41)를 ‘역사상 가장 영감을 주는 아시안아메리칸’ 61위에 선정했다. ‘올 F’를 받아 고교에서 퇴학을 당했고, 예쁘지도 늘씬하지도 않은 그는 여성, 유색인종, 동성애자 등 미국사회의 소수계층을 대변하는 목소리로 열혈 팬을 확보해 왔다. 그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지성적이며 아름다운 사람(intelligent and beautiful)’이라는 것이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그에 대해 “누구든 한 번쯤 아웃사이더라고 느꼈던 이들의 수호성인(the patron saint)”이라고 평가했다, 뉴욕 타임스는 “명석하며, 도를 넘어서는, 미국에서 가장 웃기는 코미디언 중 한 명”이라고 논평했다.



뉴욕중앙일보=박숙희 기자



지난 9, 10월엔 ABC-TV의 인기 쇼 ‘댄싱 위드 더 스타즈’에 출연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무지갯빛 의상(동성애자의 상징색)을 입고, 댄서 루이 반 암스텔과 삼바를 추면서 과체중의 조씨는 ‘누구든 할 수 있다’는 희망과 ‘너 자신이 되는 것은 아름답다’는 긍지의 메시지를 몸으로 보여주었다.



 마거릿 조는 미국에서 아시안 TV 배우의 역사를 두 번 다시 쓴 주인공이다. 1994년 미 방송 최초의 아시안아메리칸 쇼(올 아메리칸 걸)의 주연이 그였다. 2008년의 두 번째 아시안아메리칸 쇼인 리얼리티 시트콤 ‘더 조 쇼’의 주연도 그였고, 샌프란시스코시는 그해 4월 30일을 ‘마거릿 조의 날’로 선포하기도 했다.



 귀를 두 곳이나 뚫었지만 소리에 민감해 귀고리는 안 하는 여자. 성형수술은 절대 안 해도 온몸에 문신(그중 하나는 엄마 문신)을 즐기는 마거릿 조의 한국 이름은 조모란이다. 그는 순두부 없이 못 살고, 갈비 요리를 즐기는 순수 한인 혈통이다. LA와 애틀랜타에 집을 둔 마거릿 조는 지난 8월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노래하는 스탠드업 코미디 ‘조 디펜던트’ 투어를 시작했다. 11월 5일 뉴욕의 비컨시어터를 거쳐 12월 12일 조지아주 애틀랜타까지 37개 도시를 돌며 미 대륙을 ‘정복’ 중인 조씨와 e-메일로 인터뷰를 했다(※표시는 그의 자서전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 등에서 추가 인용한 것).









마거릿 조와 그의 부모님.



●코미디 재능은 누구에게서 물려받았나.



 “엄마, 아버지 모두 엄청나게 재미난 분들이다. 아버지가 유머 작가 출신이었다.”



●코미디 소재는 어디서 얻나.



 “웃기는 것을 글로 쓴 다음에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에 주위를 기울여 본다.”



●올 8월 10여 명의 유명 뮤지션과 함께 노래와 개그를 한 앨범 ‘조 디펜던트(Cho Dependent)’를 출시했다.



 “코미디 노래를 정말 좋아해 뮤지컬 코미디 앨범을 출시하는 것도 무척 좋을 것 같았다. 코미디언의 대부분은 록스타가 되고 싶어하고, 대부분의 록스타는 코미디를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쉬운 교환작업이었다. TV 토크쇼 ‘첼시 레이틀리’에서 가수 신디 로퍼와 함께 공연을 했는데 로퍼가 ‘너 목소리 참 좋은데’라고 칭찬해 노래를 배우게 됐다.”



●아시안으로서, 여성으로서 성공 비결은.



 “잘 모르지만, 아마도 끈기인 것 같다.”



●자신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공격에 대해선 어떻게 반응하나.



 “잘 모르겠다. 그저 유머로 반응하는 수밖에…. 그게 유일한 투쟁법이니까. 여성과 동성애자들은 사회의 지배문화에 의해 오랫동안 2류 계급으로 인식돼 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힘을 유지해야 하나. 바로 우리를 억압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씹는 것이다. 세 치 혀의 위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한국 이름 ‘모란’에 대해.



 “화창한 봄날에 피는 꽃. 좋아하는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만 쓴다. ※어렸을 때 나는 학교건 교회에서건 왕따였다. 아이들은 나를 ‘모란’ 대신 모론(moron·저능아란 뜻)으로 부르며 놀려댔다.”



●부모도 자신의 쇼를 좋아하나. 엄마도 코미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데.



 “부모님은 내 코미디를 무척 좋아하신다. 엄마는 내가 완벽하게 자신의 흉내를 낸다고 생각하신다. 내 행동이 좀 지나치다 싶으면, 부모님은 영어를 못하는 척하신다.”



●부모가 서점을 운영했고, 얼마 전 본인은 미 공립도서관의 모델로 등장했다. 10대에 가장 좋아했던 책은.



 “‘Are You There God? It’s Me, Margaret’과 ‘초원의 집(Little House)’ 시리즈,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가 ‘친애하는 애비에게(Dear Abby)’ 칼럼을 좋아했다.”



●10세 때 롤 모델은 누구였나.



 “리처드 프라이어, 에디 머피, 스티브 마틴. 난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다.”



●왜 하필이면 코미디언이었나.



 “항상 되고 싶었는데, 왜 원했는지는 잘 몰랐다. 그냥 호사스러운 생활에 대한 환상 외에는 코미디를 하는 확실한 비전이 없었다. 그것은 가장 큰 실수였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고, 엉뚱한 것을 원했다가 그걸 얻은 후 사실 우리가 원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고 후회하는 일이 없다. 그때는 이미 너무 늦다. 사람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실현시킬 힘이 있다. 지대한 보살핌과 사랑으로 그 힘을 활용하는 게 행복한 삶의 비결이다.”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한국적인 것은.



 “순두부. 요리는 잘 못하지만 갈비 하나는 잘 만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식이 바로 갈비다.”



●퀜틴 타란티노 감독이 보신탕을 좋아한다던데, 지금도 친구 사이인가.



“친구지간이다. 그런데 안 본 지 꽤 됐다. 그를 사랑한다.”(오래전 마거릿 조는 영화감독 퀜틴 타란티노와 사귀었다. 타란티노는 맨해튼 웨스트빌리지의 한식당 ‘도화’의 투자자이기도 하다. 타란티노는 1997년 브로드웨이 연극에 출연 중 기자와 만나 “‘펄프 픽션’ 한국 개봉 때 방문해 보신탕을 맛있게 먹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왜 남편 알 리데누어(아티스트)와 결혼을 결심했나.



 “‘영원히’ 알고 지냈던 사람이고, 우리는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가로운 날에 하고 싶은 일은.



 “한가한 날은 없다. 난 한국인이지 않느냐.”



●노래방엔 가나.



 “오 노(Oh no), 절대 안 간다!”









마거릿 조의 다섯 번째 순회공연 ‘BEAUTIFUL’을 담은 DVD(왼쪽)와 자서전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I'M THE ONE THAT I WANT』.



●37개 도시 순회 투어에서 가장 그리운 것은.



 “가족과 친구들이다.”



●공연 전후의 먹는 습관은.



 “항상 변한다. 난 공연 전에도, 끝난 후에도 항상 먹는다.”



●다음 계획은.



 “앨범 또 하나를 녹음하고, ‘드롭 데드 디바’를 촬영할 예정이다.”



 (마거릿 조는 지난 6월부터 케이블 채널 라이프타임의 시트콤 ‘드롭 데드 디바(Drop Dead Diva)’에서 주인공 변호사의 조수로 출연 중이다).



●사람들이 ‘마거릿 조는 왜 그렇게 분노하느냐’고도 한다.



 “글쎄, 나는 그게 분노가 아니라 ‘힘(power)’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자이며, 유색인종이고, 동성애자들의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이다. 난 ‘주류(main stream)’가 아닌 많은 것에 대해 매우 걱정하고 있다. 내 생활방식은 대안적이며, 내 관심사도 대안이다. 아마도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힘을 느끼는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서 화가 난 것처럼 보는 것 같다. 나는 그걸 분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어떤 일들에 대해선 화를 내지만, 대부분 분노하지 않는다.”



●개그맨, 코미디언을 지망하는 한인 젊은이에게 주고 싶은 조언은.



 “해라(Do it)!”



●2020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나.



 “그렇다. 하지만, 상상하기 싫다!”   



마거릿 조는



1968년 12월 5일 대한민국에서 국민교육헌장이 발표된 날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한국전 때 고아원을 운영하던 감리교 목사였다. 아버지 조승훈씨는 유머 작가로 64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어머니 천영희씨는 중매결혼을 거부하고, 자신을 웃기는 남성과 결혼한 신여성이다. 아시안 인구와 동성애자들이 많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소녀 마거릿 조는 부모가 운영하던 책방과 그 위층의 코미디클럽에 드나들며, 열살 때 벌써 코미디언의 꿈을 키웠다. 10대 때 폰섹스 녹음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곧 코미디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마거릿 조는 제리 사인펠드의 오프닝 공연과 밥 호프 쇼에 초대됐고, 20대 초 전국 대학가를 돌며 순회공연을 했다. 그리고 94년엔 미 코미디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여자 코미디언’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ABC-TV의 시트콤 ‘올 아메리칸 걸’의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다시 무대에 서기까지



“마약 중독의 끝에서 난 죽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나 위해 변했다”












1994년, ABC-TV는 방송 사상 최초로 아시안아메리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야심만만한 시트콤 ‘올 아메리칸 걸(All American Girl)’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한창 전성기의 25세 스탠드업 코미디언 마거릿 조가 주인공 마거릿 김 역으로 캐스팅됐다. 그러나 시청률이 저조하자 프로듀서들은 “그녀가 너무 뚱뚱하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또 “연기도 아시아인답지 않다”며 아시안 컨설턴트까지 붙여주었다. 얼마 후 비평가들은 조씨가 ‘지나치게 아시아적’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한편 한인사회에선 “더럽고,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가 한인들을 왜곡한다”며 공격했다.



 첫 시즌 19회를 끝으로 시트콤은 폐지됐다. 2주간 14㎏까지 몸무게를 줄여가며 출연했던 마거릿 조는 마침내 신부전증으로 드러누웠고, 그때부터 술과 마약, 담배, 그리고 무절제한 섹스에 의존하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거릿 조는 오랜 슬럼프에서 서서히 깨어났다. 누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돼야 한다고 자각한 그는 99년, 자전적 코미디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I’m the one that I want)’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복귀했다. 이후 전국을 순회하며 ‘올 아메리칸 걸’ 촬영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재 삼아 ABC에 멋지게 복수전을 시작했다. 마거릿 조는 동성애, 인종차별, 정치인뿐 아니라 자신의 부모 등을 소재로 한 웃음 보따리를 담아 미 대륙을 종횡무진했다. 돌아온 마거릿 조는 이후 ‘악명 높은 C.H.O.’ ‘국가 비상사태’ ‘암살’ ‘육감적인 여자’ ‘뷰티풀’ 등 코미디쇼로 전국을 돌며 폭발적인 매진 속에 순회공연을 해왔다. 인생의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당시의 지독한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나.













 “난 종종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알코올과 약물도 남용했다. 내게 대안은 정신을 차리고, 내 인생에서 내가 하고 있는 것과 나 자신에 대해 명료하게 인식하는 것뿐이었다. ※ 당시엔 아침마다 병째 보드카를 들이켜고,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지고 신장이 다 망가져도 오직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 약을 한 움큼씩 삼켰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아기를 임신했다가 낙태시키기도 했다. 나는 내 삶의 아웃사이더였다. 그러다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중독은 막판엔 갈림길에 처하게 만든다. 죽을 것인가, 아니면 더 나아질 것인가. 어떤 순간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죽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장 되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변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중독을 대치하게 한 것은 바로 일이었다. 그리고 난 마침내 내가 그토록 바라던 바로 ‘그 사람’이 되었다.”



●‘올 아메리칸 걸’과 한인 배우들이 등장하는 ‘로스트’ ‘그레이즈 아나토미’를 통해 본 미국사회의 변화는.



 “영화에 좀 더 많은 아시안아메리칸들이 있긴 하지만, 진짜 우리는 더 필요하다. 윤진, 대니얼, 산드라를 보는 것이 정말 즐겁지만, 우린 더 많이 필요하다.”



●한인사회가 ‘올 아메리칸 걸’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지금은 지지하고 있나.



 “사람들이 그 후로 ‘올 아메리칸 걸’ 같은 쇼를 다시는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 성원을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모든 세대가 나와 함께 성장했고, 지금 한인사회는 날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다.”



마거릿 조의 말·말·말



※유튜브에 올려진 코미디 쇼와 그의 발언에서 발췌했다.



부모



“엄마는 보수적이지만, 동성애자들에 대해 재밌는 태도를 갖고 있어요. 엄마가 이야기해 주셨죠. ‘모든 이들에겐 약간씩 게이 끼가 있단다. 친구를 너무 좋아하는데,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말이야. 예전에 한국에서 네 아빠가 대학교에 다닐 때 일이란다. 어느 날 아빠가 절친한 남자친구와 야외로 소풍을 갔단다. 왜냐하면 게이들은 피크닉을 워낙 좋아하거든. 그런데 친구가 아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널 사랑해’라고 말했다지 뭐니. 아빠는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랐지. 그러다 글쎄 친구를 주먹으로 쳤단다. 아빤 친구를 잃어서 평생 후회했다고 하더라. 그러니깐 동성애 친구가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때리지 마! 그냥 ‘고맙다(thank you!)’고 말해.”



성정체성



“전 동성애자인 것 같아요. 요즘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아요. 19세 때 처음 여자와 자본 후 이성애자인가, 동성애자인가 고민했는데, 저는 그저 헤프다는 걸 깨달았어요. 전 단지 사람들이 날 좋아하길 원할 뿐이에요. 전 양성애자( bi )도 아니고 저( i )일 뿐이에요.”



성형수술



“난 성형수술보다 문신이 더 좋아요. 왜냐하면 전신에 문신을 해서 사람들이 주름살을 볼 필요 없이 ‘세상에, 저 거북이가 어디로 걸어가나’ 하고 생각할 테니까요….”



롤 모델



“난 롤 모델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내 진실을 이야기할 따름이에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는 것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만일 내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격려할 수 있다면 롤 모델이 되고 싶어요. 만일 내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라고 격려할 수 있다면 그게 나에게 오는 보상인 셈이죠. 나는 아카데미상 수상 따위엔 관심이 없어요. 주류사회의 승인에도 관심 없어요. 왜냐하면 그건 내가 원하는 내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죠. 난 내 일을 하고 싶을 뿐이며, 그걸 사랑할 뿐이에요.”



‘댄싱 위드 더 스타즈’ 출연



“부모님이 직접 와서 내가 춤추는 것을 보시며 무척 기뻐하셨죠. 그런데 내가 탈락하는 바람에 추방이나 될까 봐 걱정하시고 있어요. 이제 이민국에 가서 해결해야 할 것 같아요.”



인종



“아이리시계 미국인하고 결혼할 뻔했어요. 플로리다주 사라소타에 사는 그의 가족을 만나러 가게 됐는데, 아시안이 있느냐고 물었지요. 없다고 하기에 그럼 세탁소에 들르자고 했지요. 정말 홀로 아시안이 되고 싶진 않았거든요.”



마리화나(pot, 대마초)



“난 대마초가 약이 아니라 야채라고 생각해요. 불공평해요. 유색인종은 약초용액을 좋아하기 때문에 금지하는 것은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해요.”



일부일처제



“일부일처제는 정말 이상해요. 우린 함께 사는데, 섹스는 전혀 다른 차원이 되지요. 전 아주 저임금의 매춘부처럼 느껴져요. ‘당신이 쓰레기를 내다 버려주면 OO 섹스를 해줄게요’라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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