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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런던증권거래소 CEO, 버려진 포도밭에 ‘올인’하다

중앙일보 2010.11.20 00:01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사비에르·니콜 롤레 부부의 특별한 와이너리 ‘셴블루’ … “달과 별의 기운으로 포도주 만들죠”



셴블루 와이너리의 주역들, 왼쪽부터 사비에·니콜 롤레 부부, 장루이·베네딕트 갈루치 부부. 베네딕트는 사비에의 여동생으로 포도 재배 담당이며, 장루이는 와인 주조 담당이다. 포도밭 뒤로 휴양시설과 와이너리 건물이 보인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은 프랑스인들이 꿈에 그리는 곳이다. 음습한 북부 기후와는 달리 맑고 따뜻한 날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 살기 좋은 날씨 탓에 일교차가 크고 조금은 혹독한 기후조건을 선호하는 와인에는 최적의 산지가 되지 못했다. 보르도나 부르고뉴처럼 최고급 와인이 없었던 이유다. 그런데 그곳에서 요즘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자연유산인 몽방투(Mont Ventoux)의 산자락에서 기막힌 수퍼와인이 농익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걸 만드는 사람들이 다름아닌 은행가들이란다.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프로방스로 날아갔다.



아비뇽=이훈범 기자



아비뇽 테제베(TGV)역으로 마중 나온 사람은 미모의 금발 여인이었다. 니콜 롤레(45). 와이너리 셴블루(Ch<00EA>ne Bleu)의 여사장이다. 그녀는 랜드로버 디펜더를 거칠게 몰아 밤이 깊어가는 비포장 산길을 올랐다.



 “더 좋은 길도 있지만 이게 지름길이거든요.”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는 기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늘 오르내리는 길이니 걱정 말라는 듯 웃는다. 이런 터프함이 기적을 일궈낸 것일까.



 “금융 일보다 재미 있나요?”



 미국인인 그녀는 와인과 인연을 맺기 전 뉴욕의 메릴린치에서 일했다.



 “재미 없으면 못하죠. 힘들지만 와인을 좋아하니까.”



 “좋겠어요. 맛있는 와인도 많이 마시고.”



 “좋긴 뭐가 좋아요. 돈을 끝없이 쏟아붓고 죽어라 일만 하는데…. 돈 있으면 그냥 편하게 놀면서 좋은 와인 사먹는 게 낫죠.”



 하긴 그렇다. 아무리 재미 있어도 일로 하려면….



 “근데 왜 그렇게 안 하죠?”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랬을 거예요.”



 그녀의 프랑스인 남편 사비에르 롤레(51) 역시 금융인이다. 골드먼삭스, 리먼브러더스 등 금융권에서 줄곧 일하다 15개월 전 런던증권거래소의 CEO로 취임했다. 런던의 금융인들이 프랑스 와인 최대 고객 중 하나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과 니콜의 팔자가 바뀐 게 무슨 상관일까. 그건 사비에르의 말을 들어봐야 했다.



 “1992년 휴가 차 몽방투에 왔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버려진 포도밭과 폐수도원밖에 없는 불모지였는데 첫사랑과도 같은 운명적 만남이라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동안 모아뒀던 돈으로 폐수도원과 35ha의 땅을 샀습니다.”



 “직장을 관두고 와인을 만들 작정이었나요?”



 “그건 아니고…. 처음엔 몰랐는데 좋은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알게 됐어요. 우선 연간 300일 이상 해를 볼 수 있는 지역인 데다, 해발 550m의 고지여서 포도의 품질을 올리는 데 필요한 일교차가 있고, 향을 응축시켜주는 미스트랄(프랑스 론강을 따라 리옹만으로 부는 강한 북풍) 등 바람을 충분히 맞을 수 있으며, 외부로부터 고립돼 공해나 오염에서 자유롭죠. 무엇보다 쥐라기 때 융기돼 만들어진 몽방투의 지질구조가 풍부한 미네랄 칵테일이거든요.”



 “혜안이 있었군요.”



 “천만에요. 와인 양조에 대해선 전혀 지식이 없었어요. 그래서 포도나무를 심기 전 세계 최고의 지질학 전문가와 양조 전문가를 초청해 과학적으로 철저하게 조사했지요.”



 “니콜은 남편 탓에 고생한다고 하던데요?”



 “하하, 당시 이곳에는 집은커녕 식수와 전기조차 없었거든요. 그런데 폐허만 남아 있던 수도원과 포도밭을 프로방스 최고의 럭셔리 휴양지와 최고 설비의 와이너리로 만들었죠. 저도 거들긴 했지만 많은 것을 니콜이 이루었습니다.”



 밤 늦게 도착해서 몰랐었지만 다음 날 아침 살펴본 와이너리는 환상적이었다. 호텔을 겸한 와이너리 건물은 9세기 수도원에서 15세기 유리공장으로 바뀌었던 흔적들을 소중히 간직한 채 현대미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세계자연유산으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산과 계곡들은 서양판 무릉도원이라 일컬을 만했다. 이런 곳을 발견하고 어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랴.



 “니콜을 만난 때와 몽방투를 만난 때가 비슷한데 누구와 먼저 사랑에 빠졌나요?”



 “다행히도 니콜보다 셴블루를 먼저 만났어요. 니콜을 먼저 만났다면 니콜은 이 포도밭을 절대 못 사게 했을 겁니다. 지금은 셴블루 와인을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15년이나 고생해야 한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나와 결혼해주지도 않았을 거고요. 나를 만나 니콜이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항상 고마울 따름입니다.”



 “모든 걸 니콜한테 맡길 생각이었던가요?”



 이 대답은 니콜이 했다.



 “사비에르는 총괄 기획과 자금 담당인 셈이죠. 최고가 아니면 시장에 내놓지 않겠다고 런던에서 번 것을 이곳에 몽땅 털어 넣고 있으니까요.”



 “최고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나요?”



 “우리가 이곳에서 와인을 생산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2005년산 이전의 것은 시장에 내놓지 않았어요. 우리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우리는 처음 고객에게 선보인 2006년 빈티지로 2009년 국제와인경연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더욱 완벽한 와인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겁니다.”



 최고를 만들기 위한 이들의 방법이 좀 독특하다.



 “프랑스 전통 양조법과는 다른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을 활용합니다. 단순히 농약을 치지 않는 유기농이 아니에요. 포도의 재배와 주조, 병입 등 모든 생산 과정을 달과 별의 공전 주기에 맞추지요. 자연에 순응하면서 생산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방법입니다. 주술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철저하게 과학적인 데이터와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그것만으론 부족할 텐데요.”



 “셴블루는 작은 와이너리입니다. 처음엔 와인의 품질과 생산량이 반비례하는 공식 때문에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모든 포도를 손으로만 수확하며, 수확된 열매도 이중 걸러내기를 하기 때문에 ha당 14~25hL(헥토리터)의 적은 양의 와인을 얻게 되는데 이는 다른 레드 와인에 비해 절반에 불과한 양이다). 투자한 돈과 노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지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죠. 하지만 셴블루는 우리 두 사람의 아기와 같아요. 투자금을 아주 생각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보다 우리 사랑의 결실인 셴블루를 정말 훌륭하게 키우기를 바랐지요. 처음엔 우리가 이렇게 와이너리를 사랑할 수 있을지 상상도 못했지만요.”



 “지금까지 얼마나 투자했나요?”



 “하하, 아주 많이요.”



 “돈 많이 드는 아기를 앞으로 어떻게 키우실 생각이세요?”



 “우리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어요. 프랑스는 대표적인 구세계 와인 생산국이죠. 하지만 우리의 과학적 접근은 구세계 속에서 신대륙 와인의 모던한 느낌도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구대륙과 신대륙의 조화, 전통과 과학의 조화, 프랑스인과 세계인의 조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이 와인산업의 매력이지요. 경제·비즈니스 측면에서 세계는 작아지고 하나가 되고 있듯 셴블루가 세계 와인 역사의 작은 한 조각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누가 알아요? 우리의 작은 기여가 글로벌 메리티지(Meritage=merit+heritage: 공적이 될 만한 유산)가 될 수 있을지….”



 “두 사람이 금융인 출신이라 마음이 잘 맞나요?”



 “니콜은 기능보다 모양새를 중요하게 생각하죠. 니콜의 그런 성향 덕분에 우리 와이너리가 아름다운 고급 휴양지가 됐지만 나는 기능 없는 외양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믿어요. 와인에는 내 생각이 더 중요하겠지요.”



 “그런데 프랑스인으로 어떻게 런던증권거래소(LSE)의 CEO가 될 수 있었지요?”



 “리먼브러더스 프랑스 법인장을 할 때 LSE의 고객으로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을 통해 지금은 고객의 눈으로 고객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지요.”



 “LSE의 CEO와 와이너리의 오너로서 같은 점과 다른 점이 있을 텐데요.”



 “도요타와 포드는 절대 자신의 노하우와 기술을 경쟁자에게 가르쳐주지 않지요. 하지만 와인산업은 비밀이 없어요. 적어도 생산자들은 서로 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모든 노하우를 공유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금융시장의 핵심은 유동자산입니다. 반면 와인산업은 고정자산 개념이 강하지요. 1~2년 안에 성과를 기대하는 건 무의미하며 최소한 한 세대, 즉 20년은 있어야 성과가 나올 수 있는 거죠. 하지만 두 산업 모두 현재 엄청난 글로벌 비즈니스인 것은 사실입니다. 기자 분처럼 멀리 있는 한국에서도 와인을 좋아하는 열정 하나로 하룻밤 만에 날아오시잖아요.”



 (취재 당시 사비에르는 런던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만나진 못하고 화상 인터뷰를 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j 칵테일 >> 셴블루 와인











셴블루(Ch<00EA>ne Bleu)는 ‘파란 참나무’란 뜻이다. 와이너리 안에 파란 칠을 한 커다란 참나무가 있다. 와인의 품질과 순수함을 의미한다. 셴블루는 4종의 와인을 만든다. 레드 와인 아벨라르(Abelard)는 양(陽)의 기운이 강해 힘이 있다. 스테이크와 오리고기와 잘 어울린다. 다른 레드 와인 엘로이즈(Heloise)는 음(陰)의 기운을 갖고 있어 여성적이며 우아한 맛이다. 양고기, 구운 야채와 궁합이 맞는다. 30만원대. 그 밖에 화이트 와인 알리오(Aliot)와 핑크 와인 로제(Ros<00E9>)가 있다.



>> 바이오다이내믹 농법



같은 와인을 마셨는데 어떤 날은 참 맛있고 또 어떤 날은 별로였던 기억이 있으신지. 와인이 상한 게 아니라면, 별로였던 이유는 두 가지다.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았거나, 아니면 와인 마시는 날을 잘못 고른 거다. 지구 주위 행성들의 공전 주기와 거리가 지구의 토양과 식물에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와인 맛까지 좌우한다는 것이다.



 동양의 음양오행설과 유사한 이런 개념에 기초한 것이 바로 ‘바이오다이내믹(Biodynamic)’ 농법이다. 1924년 오스트리아 과학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창시한 이론으로 이에 따르면 달의 인력은 바다에서 조수간만을 일으키는 것처럼 지력(地力)을 끌어올리거나 내린다. 또 수성과 목성의 움직임은 재배 식물의 맛에 많은 영향을 미쳐 이들 행성이 가장 가까울 때 재배한 과실의 향과 맛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행성의 공전 주기와 그 영향을 기록한 달력도 있다. 바이오다이내믹 포도원은 포도의 재배와 수확, 정제, 주조, 병입 스케줄을 모두 이 달력에 따라 정한다. 과실의 농도와 향기가 최고의 상태로 오르는 날짜인 ‘꽃의 날’과 ‘과일의 날’에 마시면 가장 훌륭한 맛을 음미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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