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일기] 양보다 질 ‘특허 포트폴리오’의 시대

중앙일보 2010.11.16 00:27 경제 4면 지면보기






심재우
경제부문 기자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이후 저간의 환율전쟁이 무역전쟁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지구촌 최대 시장인 미국은 불어나는 무역적자를 줄이려고 무슨 수라도 쓸 분위기다. 이 가운데 특허라는 전가의 보도(寶刀)가 있다. 미 통상법 337조는 미국무역위원회(ITC)에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상품 수입을 못하도록 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선두 추격자인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에서 시장을 창출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하려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과연 특허전쟁에 나설 채비가 돼 있는가. 세계 4대 특허 출원 대국에 걸맞은 내실을 갖추고 있는가. 오늘날 전자·반도체 등 주요 분야의 특허전쟁에서 몇 가지 근사한 특허를 얻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치밀하게 구성된 다양한 특허 포트폴리오가 있어야 공격과 방어를 구사할 수 있다. 쓸모가 적은 특허는 과감히 버려야겠지만, 핵심 기술 주변의 특허는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쌓아놔야 한다.



 미 퀄컴이 한국에서만 지난 10년간 5조원 넘는 로열티를 벌 수 있었던 건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이동통신 기술에서만 1700여 건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갖춘 덕분이다. 미국의 면도기 회사 질레트는 어떤까. 1997년 두 칼날이 얼굴에 좀 더 밀착되는 면도기를 개발했는데, 내부에 미세한 스프링을 장착하는 아이디어가 핵심이었다. 질레트는 특허 도용의 여러 경우의 수를 상정해 스프링과 칼날의 각도에 이르기까지 7건의 핵심 기술을 특허화해 ‘특허의 성’을 쌓았다. 이에 비해 세계 최초의 MP3플레이어 원천특허를 확보한 우리나라 엠피맨닷컴은 단 3건의 특허를 보유했다가 특허전쟁에서 패배했다. 그 결과는 2003년 7월 시장 퇴출이라는 참혹한 결과였다.



 특허 포트폴리오는 그 자체로 수익 창출원이기도 하다. IBM은 지난해 4914개의 특허를 획득해 17년 동안 특허 보유 1위를 유지했다. 매년 60억 달러를 연구개발에 투입한 덕분이다. 매년 1조원 이상의 기술료 수입도 안겨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핵심 역량과 무관한 특허는 과감히 포기하면서 특허 가치를 IBM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한양대 박재근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생존을 위해 제품 못지않게 어떤 특허를 확보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할 때”라고 조언했다.



심재우 경제부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