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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막걸리 만세!

중앙일보 2010.11.16 00:27 경제 4면 지면보기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




지난 수십 년간 소주와 약주·막걸리 등 다양한 형태의 전통 술을 빚어왔다. 그중에서도 막걸리는 가장 어려운 술이다. 막걸리는 쌀과 누룩·물만으로 빚어서 가공하지 않은 상태로 마시니 물과 재료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살균을 거치지 않은 생막걸리는 적나라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벌거벗은 놈’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막걸리는 술이라기보다는 음식에 가깝다. 막걸리가 어려운 것은 풀밭에 놓아 기르는 양처럼, 미생물을 놓아 기르는 방법을 쓰기 때문이다. 노련한 양치기도 가끔은 늑대에게 양을 빼앗기듯 막걸리는 참으로 빚기 어려운 술이다. 요즘은 막걸리도 대량으로 생산된다. 덕분에 막걸리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기는 하지만 인공감미료를 넣어 빚은 막걸리는 왠지 성에 차지 않는다.



 좋은 막걸리는 ‘샐러드’와 같다고 생각한다. 약간 시든 채소는 국을 끓이거나 살짝 데치고 볶아서 나물로 무쳐 먹으면 된다. 하지만 가장 신선한 채소는 잘 씻은 다음 그대로 먹는 게 좋다. 채소에 비유하자면 소주가 국에 넣는 국거리고, 약주가 나물무침이라면 막걸리는 샐러드라고나 할까. 그래서 막걸리의 재료는 가장 신선하고 좋은 것을 써야 한다. 나는 우리 막걸리에는 우리 쌀을 쓰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많은 막걸리가 수입 쌀을 원료로 사용하고 있어서다. 일반 막걸리에 주로 사용되는 수입 쌀은 묵은 쌀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선한 샐러드 같은 막걸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슬로 라이프’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경쟁과 성장만이 미덕이 아니라 잠시라도 자신을 돌아보는 생활 속 ‘감속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패스트푸드보다는 집 밥이, 첨단기술보다는 전통문화가, 구경보다는 머무름이, 산을 정복하기보다는 언저리를 돌아 걷는 삶이 느린 삶의 풍경이다. 잠깐이라도 ‘문득 느리게 사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막걸리는 느린 술이다.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 미생물의 노고로 빚어진 술, 그것을 몸에 이로운 음식과 함께 즐기는 술, 격식과 체면을 내려놓고 툭 터진 마음으로 입가에 술 방울을 묻혀 가며 먹어도 되는 술, 그런 술이 막걸리다.



 나는 막걸리만은 공장이 아닌 양조장이나 부엌에서 빚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골목 한 귀퉁이 아담한 술독에서 익어가는 막걸리의 소리와 향기를 술꾼들이 함께 즐기며 빚어 마시는 장면을 꿈꿔 왔다.



 마침내 그 꿈이 이루어져 지난여름 서울 양재동에 ‘느린 마을 양조장’이라는 스무 평 남짓한 술도가를 열었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서울 골목골목에 여섯 군데 ‘느린 마을 양조장’을 만들었다. 규모가 작다 보니 이곳에선 내가 빚은 술을 누가 먹는지, 내가 먹는 술을 누가 빚었는지 다 알게 마련이다. 이것이 막걸리의 본성에 맞는다. 막걸리의 진정한 현대화·세계화도 이런 문화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수지를 어떻게 맞추느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나는 성공을 확신한다. 세상 계산을 잠시 잊게 하고, 고향을 생각나게 하고, 바쁜 직장인의 소매를 넌지시 붙잡는 매력이 있어서다. 날이 갈수록 막걸리는 점점 더 어렵고 두려운 존재가 돼 간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민족의 성품과 개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막걸리에 대한 사랑도 깊어간다. 그래서 난 매일매일 마음속으로 외친다. 막걸리 만세!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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