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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세상읽기] 환율갈등 봉합이 성과다

중앙일보 2010.11.16 00:07 종합 37면 지면보기






김종수
논설위원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무사히 끝났다. 행사 자체는 성공적이라고 하지만 관심의 초점이었던 환율이나 무역불균형 문제에서 획기적인 해법을 기대했다면 실망이 적지 않았을 법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 선언에서 나온 결론은 일단 갈등을 덮고 문제 해결을 나중으로 미룬다는 뜨뜻미지근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확인하기 위한 예시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의장국인 프랑스의 수임기간 중에 첫 번째 평가를 한다는 일정에 합의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일 수 있을 것이다.



  플라자 합의 같은 화끈한 환율조정은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고, 미국이 주장한 경상수지 수치목표는 제대로 거론되지도 않았다. 그나마 추진 일정에 합의한 가이드라인이라는 것도 경상수지뿐만 아니라 (물가를 감안한) 실질실효 환율이나 외채규모, 국내총생산(GDP), 정부부채 규모, 고령화 수준 같은 나라별 사정을 고려한 ‘다양한’ 지표를 통해 불균형이 있는지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규모 불균형이 있다는 판정을 받으면 그때 가서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해결책을 강구한다는 것이다. 그 가이드라인이나 해법도 강제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예시적’인 권고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환율 문제의 해결은 여전히 갈 길이 먼 것이다.



 그러면 환율 문제가 화끈하게 해결되지 않았으니 이번 서울 정상회의가 실패했다고 할 것인가. 그건 꼭 그렇지 않다. 환율 문제가 G20 정상회의의 유일한 의제도 아니거니와 애당초 정상들이 한 번 모인다고 확실한 해법이 나올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요국 간의 정면충돌을 피하고 이만한 정도로 갈등을 봉합한 것 자체가 큰 성과일 수 있다. 적당히 체면을 차리는 수준에서 문제를 덮고 가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의 해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개별 국가의 이해가 첨예하게 걸린 환율 문제를 G20 정상회의 의제로 들고 나온 것 자체가 무리였다. 미국과 중국의 환율갈등이 세계적인 환율전쟁으로 번지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의제로 삼긴 했지만 처음부터 똑 부러진 해결책이 나오기 어려운 사안이었다. 무엇보다 환율은 각국의 경제상황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이다. 또 나라마다 환율결정 방식이 다르다. 사정이 이런데도 환율이 만병의 근원이라거나, 환율만 바로잡으면 문제가 다 해결될 듯이 다그친다고 풀릴 사안이 아니란 얘기다. 경상수지 불균형도 마찬가지다. 경상수지 역시 각국의 경제구조와 경쟁력이 반영된 수출입 활동의 결과이지 각국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문제의 원인이 아니다. 문제가 생긴 원인을 제쳐두고 결과를 탓한다고 불균형이 해소되진 않는다.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환율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책임이 있다면 그 대부분은 미국이 져야 한다. 미국 언론들은 환율 문제에 아무런 소득을 거두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두고 ‘서울에서의 굴욕’이라고 비아냥거린다. 저성장과 실업 증가, 재정적자 등 미국 경제가 안고 있는 약점을 온통 중국과 독일, 브라질 등 수출국들의 환율정책 탓으로 돌리니 어느 나라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겠느냐는 것이다. G20 서울회의 직전에 미국이 내놓은 이른바 양적완화(대규모 돈풀기)가 신흥국들의 반발을 산 것도 미국의 말발이 먹히지 않은 데 일조를 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는 오히려 신흥국들이 부분적으로 자본통제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일각에선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의 환율이나 경상수지를 문제삼을 게 아니라 자본시장(특히 채권시장)의 개방 확대를 요구했더라면 명분과 실리 면에서 모두 훨씬 나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번 G20 서울회의에서 환율 문제가 적당히 봉합된 것이 오히려 성공일 수 있는 이유는 어차피 단박에 풀릴 수 없는 환율갈등을 덮음으로써 세계경제의 파국을 면하고 회원국들이 차분하게 문제해결에 나설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제 다른 나라의 환율이나 경상수지를 윽박질러 미국 경제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내부의 약점을 해소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중국도 내부의 거품 해소와 내수 진작, 완만한 환율절상 등 경제구조조정에 한결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다른 나라들도 경쟁적인 통화가치 절하가 불러올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동시에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G20 서울회의 이후 환율전쟁이 격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보호주의로 회귀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상 환율전쟁 대신 G20 국가 간에 얼굴 붉히는 무역전쟁을 벌여서도 안 된다. 세계는 갈등을 피하고 동반 성장과 공동 번영의 길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G20 서울 정상회의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김종수 논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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