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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검찰(檢察)’인가 ‘가찰(苛察)’인가

중앙일보 2010.11.10 19:52 종합 37면 지면보기



정치권, 청목회 수사 반발하지만 수사 저지엔 ‘불신의 업보’가 커
검찰, 수사로 ‘적법·적정’ 입증하고 실패하면 ‘분란’ 응분의 책임 져야



최훈
토요섹션 j 에디터




2003년 2월 중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과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가 안가(安家)에 마주 앉는다. 취임을 코앞에 두고 초대 내각 명단을 짜기 위해서였다. 최대 쟁점은 강금실 변호사의 법무부 장관 기용 여부다. “46세의 민변 소속 강 변호사가 장관이 되면 검찰 조직 동요가 너무 심해질 겁니다.”(文) “….”(盧) “검찰 내 여론이 그렇습니다.”(文) “그게 뭔 얘기요. 검찰은 개혁 대상입니다. 강금실씨가 장관이 되면 이미 개혁의 반은 이뤄진 거요.”(盧) “그래도 그게 ….”(文) “이봐요 문 실장. 그런 얘기 법무부 ○국장한테 들은 것 아니요.”(얼굴이 벌개진 盧)



 문희상 의원은 이 장면을 떠올리며 “모골이 송연해졌다”고 기억했다. 당시 문 의원은 검찰 내 측근을 통해 검찰 분위기를 보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노 대통령 당선인은 문 의원의 검찰 ‘파이프 라인’이 누군지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검찰 내 또 다른 라인이 이미 노무현 당선인에게 ‘강금실 반대파’의 동향을 보고해 왔던 것이다.



 정치권력에 가장 민감한 조직 중 하나가 검찰이다. 한편으론 사법권력의 예리한 칼날을 곧추세워 존재감을 각인시켜야 한다. 동시에 검찰총장·검사장 등의 인사권과 부처 예산권을 쥔 대통령·의회의 권력과 모나지 않게 공생해야 한다.



 그런 검찰이 지금 의회에 칼날을 겨누고 있다. 서울 북부지검의 청목회(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 수사 쟁점은 선명하다. ‘적법(適法)’과 ‘적정(適正)’의 문제다. 여야는 “후원금 10만원까지 일일이 파헤치는 건 수사의 적정선을 한참 넘은 국회 유린”이라고 주장한다. 일본 법조계의 표현대로라면 ‘검찰(檢察)’이 아닌 ‘가찰(苛察·필요 이상 사람을 괴롭히는 가혹한 검찰)’이란 논리다. 검찰은 “입법 대가로 의원 측이 후원금을 먼저 요구하거나, 현금 등 다른 형태의 수뢰 의혹이 있어 법대로 수사할 뿐”이라고 맞선다.



 일단 검찰이 기선(機先)을 잡는 흐름이다. 정치권이 쌓아온 불신의 업보(業報) 때문이다. 2009년 중앙일보의 파워조직 국민신뢰도 조사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최하위인 25, 24위로 추락했다. 정치권 통설엔 “이 돈 먹으면 반드시 탈 난다”는 3대 금기(禁忌) 자금이 있다. ▶협회 등 이익단체 ▶조합장 선거 ▶분쟁 중인 쌍방의 돈이다. 하지만 이 금기에 손대 계속 전비(前非)를 쌓아온 게 정치권이기도 하다. 검찰은 2008, 2009년 모두 12위의 중간선을 유지하고 있다. 어쨌든 검찰이 외치는 ‘법대로’를 국민 신뢰도 꼴찌 집단이 뒤집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상황을 걷잡을 수 없게 만든 또 하나의 이유는 ‘극장식 수사’의 모양새 때문이다. 권력 대 권력 대결이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의혹 누설과 의회의 맞비난 등 활극(活劇)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게 이번 수사다. 여기선 ‘말’보다 ‘팩트(fact)’를 지닌 공격자 쪽이 유리하다. 추가 의혹이 스멀스멀 뉴스면에 돌아다니는 터에 “메스를 거두라”는 건 궁색해 보일 수밖에 없다. 서슬퍼런 도쿄지검 특수부장을 거쳐 일본의 검사총장까지 올랐던 ‘미스터 특수’ 요시나가 유스케는 “수사란 일단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 절대 뒤로 물러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정치인은 수사를 받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입게 된다. 그래서 뒤에 검찰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특수부에 ‘무죄 결말’은 없다는 게 불문율”이라고도 했다.



 검사들의 자존심·명예욕 역시 이런 강공 드라이브에 작용하는 분위기다. ‘스폰서 검사’ 파문을 겪었고, 한화·태광 수사 등에도 지지부진하다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때맞춰 드라마 ‘대물’에선 하도야 검사(권상우 분)가 정치자금 비리를 파헤치는 정의의 사도로 포장되고 있다. “무능하다”는 얘기만은 못 참는 검사들로선 이번 정치권 수사를 국면 반전의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 수사는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결론도 하나다. 검찰이 실체적 범죄를 찾아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1988년 리쿠르트 사건 수사 당시 도쿄지검 특수부장이던 마쓰다 노보루는 “검찰은 말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법정에서 할 뿐”이라고 입을 닫았다. 그렇다. 검찰은 수사로 말하라. 실패하거나, 또 실패와 이 엄청난 분란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도 명심하라.



최훈 토요섹션 j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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