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수대] 비혼

중앙일보 2010.11.10 19:34 종합 39면 지면보기








“결혼은 새장과 같다. 밖에 있는 새는 들어가려, 안쪽의 새는 나가려 애쓴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의 탄식이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는 결혼은 아담과 이브도 고민했을 명제 아닐까.



 버나드 쇼는 결혼을 비즈니스로 비유했다. 되도록 빨리 결혼하는 것은 여자의, 늦게 결혼하는 것은 남자의 비즈니스란다. 결혼은 최대 유혹과 최대 기회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스테파니 쿤츠도 『진화하는 결혼』에서 맞장구를 친다. 과거 결혼의 이유는 성생활과 자녀양육, 노동력 분담과 재산축적이다. 그런데 여성의 경제적 지위향상과 피임법 발달로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결혼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진화했다는 거다.



 그러면 시인들이 그토록 찬양하는 사랑은 뭔가. 중세와 근대사회에서 낭만적인 사랑이야말로 신분질서를 위협하는 장애물이었다고 한다. 조혼이 만연했던 것도 그 때문이란다. 비록 사랑이 결혼의 전제조건이 되면서 이혼도 늘어났다지만.



 그럼에도 인류의 진화는 결혼의 산물이다. 척박한 지구환경에 적응토록 한 열쇠다. 그것이 ‘이기적 유전자’에 조작된 현상일지라도. 서양에 ‘유대인이 유럽인보다 똑똑한 이유’라는 우스개가 있다. 똑똑한 유대인은 랍비가 되고, 똑똑한 유럽인은 신부가 됐다. 그런데 랍비는 결혼하고, 신부는 독신이다. 이런 상황이 세대를 거치며 집단 진화의 차이로 나타났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다. 하지만 마이클 루스가 『진화의 탄생』에서 언급한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지능 발달의 예를 접하면 그냥 웃어넘기기 힘들다. 미국 유타대학의 그레고리 코크란 역시 중세 고리대금업으로 성공한 유대인의 결혼과 다산(多産)을 주목한 바 있다.



 최근 비혼(非婚) 여성이 늘고 있다. ‘미혼’이란 말은 결혼이 필수, ‘비혼’은 선택이란 인식이 바탕이다. 예전이면 ‘노처녀’로 불렸을 30대 초반 여성 10명 중 3명이 속칭 ‘골드 미스’란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알파 걸’, 중국의 ‘성뉘(剩女)’도 이미 사회문제다. 인구가 국력이기 때문인가. 호칭으로 보면 중국 비혼녀는 ‘잉여’ 신세인데, 우리나라에선 ‘금값’이다.



 결혼을 서둘러 좋은 결과가 없고(셰익스피어), 온 정신을 기울여야 하는 게 결혼(입센)이다. 그래도 사랑을 어찌하랴. 마냥 눈을 높인 ‘앙혼(仰婚)’은 남존여비의 유습일 터. 조강지부(糟糠之夫)면 어떤가.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서 죽는데, 의무이자 권리는 하나다. 꽃은 화수분을, 사자는 교미를, 사람은 사랑을 한다. 



박종권 논설위원



▶분수대 기사 리스트

▶한·영 대역 보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