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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와 제2외국어 함께 배우는 다중언어교육

중앙일보 2010.11.10 00:16 Week& 15면 지면보기



중국어 동화 보고 영어로 다시 읽고 … 이야기 중심으로 흥미 돋워요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배우는 싱가포르 국제유치원 쉐리하트의 원생들이 중국어로 수업을 하고 있다. [김진원 기자]



이중언어교육은 세계적인 트렌드다. 최근에는 영어는 기본이고 제2외국어를 배우는 다중언어교육에 대해 관심이 높다. 영어와 중국어를 같이 배우는 유치원(유아 대상 어학원)을 비롯해 영어·중국어 이머전 교육을 하는 사립초등학교도 있다. 하지만 이런 교육에 대한 찬반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동시에 여러 언어를 배우면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는 의견과 각각의 언어가 다른 언어를 습득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받아들이는 5세가 적기



4일 오전 10시 서울 역삼동에 있는 싱가포르 국제유치원 쉐리하트인터내셔널 스쿨. 5세 반 아이들이 중국어 수업을 하고 있다. 이날 주제는 ‘똥우 펑요(동물 친구)’. 중국 국적의 짜오 홍 엔 교사가 아이들에게 동물 사진과 인형을 보여주며 좋아하는 동물, 동물이 좋아하는 음식 등에 대해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같은 주제로 스토리텔링, 미술·역할놀이, 중국동요 부르기가 이어졌다. 간단한 필획을 배우기도 한다. 이곳은 싱가포르의 다중언어교육 시스템을 도입한 영어·중국어 유치원이다. 오전과 오후로 나눠 같은 주제에 대해 중국어와 영어로 배운다.



아직 한국어도 서툰 아이들에게 영어와 심지어 중국어까지 가르치는 다중언어교육에 대해 일부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쉐리하트 김현지 원장은 “이 나이 또래가 다중언어교육을 하는데 있어 적기”라고 강조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모든 언어를 우뇌에 있는 브로커스 에어리어(Broca’s area)라는 곳에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모국어와 외국어의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뇌생물학을 접목시킨 이중언어교육을 연구한 손현정 박사는 “인간의 언어 습득 시기는 생물학적으로 제한이 돼 있다”고 말했다. 두뇌는 모국어와 외국어가 저장되는 부분이 달라 몇 개 언어든 모국어 저장 부분에 저장되면 모국어 같은 수준이 된다는 얘기다.



영어·중국어 유치원 메이홈 구자영 원장은 “외국어를 학습이 아닌 생활과 놀이, 문화로 습득하면 알파벳이나 한자를 몰라도 의미를 유추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 원장은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배우면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6월 벨기에 브뤼셀자유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뇌단층촬영을 통해 다중언어로 수업을 듣는 어린이는 외국어뿐 아니라 모국어도 더 체계적이고 쉽게 습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어 구사력뿐 아니라 연산력, 기억력에서도 모국어로만 수업을 듣는 어린이보다 뛰어났다. 2009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연구팀은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단일 언어 사용자보다 새로운 언어를 빠르게 습득한다고 발표했다. 손 박사는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두뇌의 지각과 인식에 좋은 영향을 줘 새로운 언어를 쉽게 배우게 한다”고 설명했다.



엄마표 다중언어교육은 ‘듣기’와 흥미 유지











고려대 사범대학 박영순(국어교육과) 명예교수는 “다중언어를 효과적으로 습득하기 위해서는 의지와 의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처음 배운 언어와 두번째 배운 언어를 비교·대조해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 교수는 “같은 어순이고, 비슷한 언어 같지만 혼돈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하늘(안산 시곡초 3)양은 중국어 공부방에서 올해 초부터 중국어를 배운다. 엄마 김애순(37·안산시 상록구)씨는 몇 해 전 중국어 바람이 불던 때 일곱 살이던 정양에게 중국어를 가르쳤다. 하지만 얼마 안 돼 포기했다. “지금은 교재와 콘텐트가 다양해졌지만 3~4년 전만 해도 영어에 비해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콘텐트가 부족했어요.” 다시 중국어를 시작할 때는 스토리북을 통해 흥미를 이끄는 방법을 택했다. 정양은 하루 20~30분씩 하는 중국어 공부 시간이 즐겁다. 영어를 배우면 받는 스트레스를 중국어를 배우며 푼단다. 리듬감이 있는 발음 때문이다. 김씨는 “중국어를 처음 배울 때는 하늘이도 영어 발음과 혼돈을 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보통 부모가 자녀의 다중언어교육을 하기란 쉽지 않다. 손 박사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많이 들려주기’를 권했다. 구 원장은 “5세 이전 아이라면 외국어 동화책을 읽게 하기보다 귀를 열어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CD를 들려주고 책을 함께 봐도 좋다. 예컨대 외국어 구연동화를 들려준 후 부모가 같은 동화를 한국어로 읽어주는 방법이다. 김 원장은 “이중언어교육은 언어만 교육해선 안 된다”며 “시간이 지나면 언어능력을 이끌어 낼 사고력과 이해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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