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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조선왕조의궤 반환에서 국력을 생각한다

중앙일보 2010.11.09 19:07 종합 38면 지면보기
외국에 강탈당한 문화재를 통해 우리는 역사를 읽는다. 조선왕실의궤(儀軌)는 일본의 약탈을 쳐다만 봐야 했던 국권 잃은 나라의 처량한 신세를 말해주고,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 해군의 함포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던 약소국의 비애를 설명한다. 우리의 것을 스스로 지킬 힘이 없어 속절없이 당해야 했던 과거의 아픈 흔적들이다. 조선왕실의궤의 반출과 반환 과정은 국제사회에서 작동하는 힘의 논리를 새삼 일깨워준다.



 그제 한·일 정부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반출된 도서 1205책을 우리의 품으로 되돌려주기로 합의했다. 조선시대 국가의 주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조선왕조의궤 167책, 대전회통(大典會通) 1책,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99책, 규장각 도서 938책 등 반환 목록의 내용이나 규모에서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조선총독부를 통해 반출된 한반도 유래 도서를 반환하겠다”는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약속이 석 달 만에 이뤄진 점에서 일본의 진정성도 사줄 만하다.



 반환 도서들은 식민지 시대에 반출됐다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조선왕조의궤는 1922년 ‘조선총독부 기증인’이라는 도장이 찍힌 채 일본으로 건너갔다. 말이 기증이지 강탈당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게 당시 조선의 시대상황이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2010년 8월 현재 전 세계 20개국 412곳의 박물관·미술관·도서관 및 개인이 총 11만6896점의 한국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일본 6만1409점, 미국 2만8297점을 비롯해 중국· 영국·러시아·독일·프랑스 등지에 흩어져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외규장각 도서가 강탈의 대표적인 사례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약탈해 갔으니 144년 동안 귀환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297권 중 되돌아온 것은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들고 온 한 권이 전부다. ‘대여’니 ‘임대’니 하며 반환형식을 놓고 17년을 끌어왔다. G20 서울회의 때 반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프랑스의 처분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조선왕실의궤 등은 ‘반환’이 아닌 ‘인도’라는 표현으로 넘겨받는다. 반환은 약탈 문화재를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의미에서 일본이 애써 피하려 한 모습이 역력하다. 문화재 약탈국가들은 약소국의 문화재를 ‘보편주의’란 논리로 정당화한다.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귀화 문화재’로 봐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번 반환은 한국해외전적조사연구회·조선황실의궤환수위원회 등 민간단체의 숨은 노력 덕분이다. 정부도 민간단체를 측면 지원하면서 약탈 문화재 환수를 적극 도와야 한다. 이집트·인도·멕시코 등 약탈당한 문화재가 많은 나라들과 국제적 공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문화재를 민족의 혼(魂)이 담긴 유산이라고 한다. 우리의 혼을 빼앗기는 데는 한순간이지만 되찾아오는 데는 긴 시간과 험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도서 반환은 우리 문화재를 빼앗기는 슬픔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의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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