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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은 우리 동네 만들기 나선 주부들

중앙일보 2010.11.09 04:24



김혜영씨 “관광객들도 살고픈 마을로…”
정진씨 “소나무숲 지키고, 쉼터 문 열고…”







드라마 ‘대물’에서 서혜림(고현정)은 말한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우리나라가 마음 편히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나라면 좋겠다”고. 서혜림은 버려진 간척지에 생긴 모기떼로 고생하는 주민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적극적인 주부이기도 하다. 우리 이웃 중에도 서혜림 같은 주부들이 있다. 사람이 중심인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부 정진(53·서대문구 연희동)씨와 김혜영(38·송파구 가락동)씨를 만나봤다.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해 정진씨



연희문화창작촌(연희동)은 소나무숲이 울창하기로 유명하다. 이 연희동 소나무숲을 얘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게 주부 정진씨다. 창작촌이 들어서기 전 이곳에는 서울시사편찬 위원회가 있었다. 2004년 편찬위원회가 이전하면서 땅을 민간에 매각한다는 계획을 들은 정씨는 서울시에 편지를 보냈다. 생태보전시민모임에 부탁해 받은 숲생태 실사보고서를 첨부한 편지의 내용은 ‘숲을 지켜달라’였다. 서울시는 매각을 철회하고 숲을 보존했으며, 4년 뒤에 문학창작촌이 세워졌다.



사실 소나무숲 살리기는 정씨가 한 일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한겨울 폭설이 내릴 때면 제설작업에 앞장선다. 내 집앞만이 아니라 옆집, 아랫집, 동네 한 구역을 모두 책임진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 있는 집은 염화칼슘을 계단까지 뿌린다. 운전이 서툰 주부가 있는 집은 자동차 바퀴 밑까지 꼼꼼히 챙긴다.



동네에 도둑이 들자 30곳이나 되는 이웃집을 돌며 “사설보안시설이 있어도 도둑이 들었다더라, 창문 단속을 철저히 하자”며 일일이 당부한 적도 있다.



귀찮고 번거로워도 잘못된 것은 시정하고 필요한 일은 해결해야 한다는 게 정씨의 생각이다. 여고시절에도 눈이 오면 새벽부터 골목길을 쓸었고, 신혼살림을 차렸던 개포동 아파트에서는 이사 가기 전날에도 집 근처 잡초를 뽑았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지 않던 시절, 공동쓰레기장 청소를 도맡아 한 것도 그였다. 정씨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정씨는 요즘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다. 본인이 사는 집의 2, 3층을 비워 ‘마음쉼터’로 만들었다. 자살시도를 하거나 자살한 가족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쉼터다. 이처럼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건 정씨가 30년 동안 알게 모르게 꾸준히 해온 일이기도 하다. “동네를 가꾸고 숲을 지키는 일처럼 늘 해왔던 일”이라는 정씨는 “항상 그 자리를 지키면서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15일 문을 여는 마음쉼터(cjin0109@paran.com)는 일단 여성만 이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가락동의 구정평가단원 김혜영씨



‘해마다 여름이면 아이들 손잡고 성내천 물놀이를 즐기는 시민입니다. (중략)성내천에 탈수기를 설치해 주셨으면 합니다. 젖은 옷과 수영복을 탈수기에 말리면, 짐을 가볍게 할 수 있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혜영씨가 올 2월 ‘송파구민 아이디어 공모전’에 낸 사연이다. 물놀이를 끝내고 집에 돌아갈 때가 되면 늘 젖은 옷이 고민이었다. 손으로 제대로 짜기 힘든 데다 짐도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공모전 소식을 듣고 그동안 불편했던 일을 떠올렸어요. 이 아이디어로 은상을 받았죠.” 지난 여름에는 성내천에 줄을 서서 탈수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엔 내가 필요해서 올린 글이었는데 사람들한테도 유용했구나 싶으니까 더 뿌듯했어요.”



김씨는 송파구 가락1동 구정평가단의 단원이기도 하다. 구정평가단은 구가 시행하는 주요 시책에 관해 주민 여론을 수렴하고 반영한 후엔 점검하고 평가하는 일을 한다. 김씨는 상을 받은 후 구정평가단 활동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사뭇 달라졌다.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눈에 보이는 것마다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요즘엔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아졌어요.지하철역 앞에 거치대가 모자라서 역 근처 여기저기에 묶어두는 사람이 많더군요. 보기에도 좋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도 거치대가 더 필요하겠더라고요.” 초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다 보니 집 근처 가로등이 어둡거나 놀이터 시설이 낙후된 것도 눈에 들어왔다. “가로등은 시정 조치가 됐으나 놀이터는 재건축이 예정된 아파트에 속해 있어 수리가 안 된다고 하더군요.”



최근엔 G20 서울정상회의를 앞두고 다른 구정평가단원들과 함께 버스정류장을 점검하는 일에도 신경 쓰고 있다. 청소 상태는 괜찮은지, 훼손된 노선도는 없는지 등을 살핀다. “송파구는 교통이 편리하고, 석촌호수나 성내천처럼 산책하기 좋은 곳이 많죠. 사소하지만 불편한 점들을 고쳐나가며 더 깨끗하고 살기 좋은 동네가 되면 좋겠어요. 관광객들이 왔을 때,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할 정도로요.”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사진=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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