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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죽전원 장애인 체험홈을 가다

중앙일보 2010.11.09 03:05 2면 지면보기



지역사회 일원으로 당당하게 … "우리는 한가족”



직장에서 퇴근한 죽전원 체험홈 가족들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활짝 웃고 있다.[조영회 기자]





5일 오후. 손배식(42·가명)·서상주(38·가명)·장문식(35·가명)·맹석영(28·가명)씨가 탁자에 둘러 앉아 열심히 손작업을 하고 있다. 주로 에어컨이나 플라스틱 수도관에 들어가는 파이프 연결 부품과 소켓 등에 부속품을 끼워 넣는 단순작업이다.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은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천안죽전직업재활원(천안시 동남구 구성동)에 근무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삼화복지재단이 설립한 장애인재활공동체시설이다. 이들을 포함해 40여 명의 장애인들이 이곳에서 일한다. 퇴근 후에는 모두 건물 옆 장애인 생활시설인 천안죽전원에서 지낸다. 하지만 손씨 등 4명을 비롯해 백석동 한정식집에서 일하는 오현석(41·가명)씨를 포함한 모두 5명은 이곳 죽전원에서 생활을 하지 않는다. 보건복지가족부·충남도·천안시가 이들을 위해 주거공간을 마련해 줬기 때문이다.









장문식(가명)씨가 퇴근 후 청소를 하고 있다.





 자신들만의 집이 생겼다는 뿌듯함은 얻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그들이 알아서 생활을 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거나 시켜먹는 일 모두 본인들의 몫이다.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워 지역사회 일원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지만 지적장애인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역사회로의 이주를 희망하는 장애인 가운데 생활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이지만 사회로의 첫발을 내디딘 날부터 모든 게 해결해야 할 문제의 연속이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집에 가는 발걸음은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막혔다. 어떻게 여는 걸까? 모두들 고민 끝에 힘으로 열려고 나섰다. 1층 현관문 여는 방법부터 반복적인 교육이 시작됐다. 엘리베이터 타는 법,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현관문 여는 법, 욕실에서 샤워하는 법, 양치질하기, 속옷 챙기기, 청소·세탁하는 법, TV시청하는 법, 이밖에 안전을 위해 지켜야 할 것까지 하나하나 난관을 극복해 나갔다.



 사회에 나와 맞이하는 첫 저녁시간. 한가족이 둘러 앉아 가족회의를 열렸다. 집안일을 할 당번을 정하기 위해서다. 다들 서로 요리를 하겠다고 아우성이다. 반면 청소와 빨래, 화장실청소 당번을 정할 때는 말없이 눈치만 본다.



일주일 식단을 짜는 일도 쉽지 않다. 담당교사 최창희씨가 먹고 싶거나 직접 만들 수 있는 음식을 불러보도록 했다. 수제비·칼국수·볶음밥·된장찌게·갈비찜·김밥·오징어볶음·미역국·어묵국·자장면·제육볶음 등 여러 메뉴가 나왔다. 식단이 정해지자 이번엔 장을 볼 일이 걱정이다. 담당교사가 생활정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모든 일을 맡기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쌀 씻는 방법에서부터 물의 양을 맞추는 연습을 한 뒤 서툴지만 밥짓는 모습에서 이들은 어느새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식사 후 동네 지도그리기가 이어졌다. 집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하기 위해 생각해 낸 아이디어다. 그림실력이 전혀 없는 식구들. 도화지에 네거리를 그리고 아파트, 육교, 음식점, 학교, 마을 목욕탕, 주민센터, 중국집 등 주변에 가봐야 할 곳을 지도에 아기자기 그렸다. 아파트단지에 있는 부동산과 수퍼를 비롯해 인근의 대형마트도 넣었다. 남들이 보면 창피할지 몰라도 꼭 알아야 할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들만의 소중한 지도를 완성해 나갔다.



“띵동~”. 식구들 중 유일하게 외식업계에서 일하는 오현석씨가 손에 족발을 들고 퇴근했다. 가족 수가 많아 양이 부족했는지 알뜰하기로 소문난 장문식씨가 떡볶이와 만두를 샀다. 특히 이날 저녁은 현석씨의 생일이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두가 케익 앞에 옹기종기 모여 축하파티를 열었다. 자신의 생일인 듯 축하노래를 불러주며 밝게 웃는 표정에 행복이 묻어 나왔다.



이렇게 한가족은 축제의 분위기를 내며 오순도순 야식을 먹었다. 야식 후 옷을 갈아입고 함께 운동을 나갔다. 한지붕 다섯 가족이라고 해도 될 만큼 성격과 스타일이 서로 다른 이들이지만 TV를 보고 웃고 떠드는 그들은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는 행복한 모습이었다.



 죽전원 체험홈에 사는 가족들은 얼마 뒤 여행지를 선정해 1박2일간 추억만들기에 나설 예정이다. 천안죽전원은 이들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재정 및 자기관리, 개인별 적응행동을 파악·지도하는 등 사회에서 당당한 직장인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줄 계획이다.



천안죽전원 정송월 원장은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이 일반 시민처럼 사회생활에 완벽히 적응해 살아가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는 사업을 통해 장애인들이 시설생활을 떠나 사회의 일원으로 누구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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