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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않는 지방의원 의정비 주지 말자” 주민 입법청원 2년째 국회서 낮잠

중앙일보 2010.11.09 00:29 종합 18면 지면보기
이희석 울산시의원은 8월 중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돼 의정활동이 중지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매월 20일 의정비 465만원을 꼬박꼬박 받고 있다. 공천헌금을 건넨 혐의로 9월 말 구속된 주문희 대구시의원도 지난달 20일 450만원의 의정비를 모두 받았다. 의정활동을 못 해도 의정비는 한 푼도 놓치는 법이 없다. 행정안전부가 조승수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만 부정부패·선거법 위반 등으로 사법처리된 지방의원이 226명으로 전체 지방의원(3621명)의 6.2%나 됐다. 이들 역시 매월 수백만원에 달하는 의정비를 모두 챙겼다. 이들만이 아니다. 의회 회의나 현장조사에 무단 결석하는 등 의정활동을 안 하면서 의정비만 챙기는 지방의원도 부지기수다.



 국민 세금만 낭비하는 지방의원들이 늘어나자 지역 주민들이 “일 안 하는 지방의원에게 돈을 주는 것은 혈세 낭비”라며 반발하고 있다.















 진보신당 울산시당과 울산시민연대는 최근 잇따라 성명을 내고 “구금돼 의정활동이 불가능한 시의원에게 의정비 지급을 중단하라”며 울산시의회를 성토했다. 여야 시의원들이 “동료 의원 입장에서 야박한 것 같아서…”라며 멈칫거리자 1인시위·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말엔 전주시민 777명이 울산시민들과 비슷한 요구를 담은 입법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전주시의원 3명이 뇌물 혐의로 구금된 상태로 6개월~1년간 매월 300만원씩의 의정비를 챙겨간 데 대한 반발이다. 또 2008년 서울시의회 의정 선거를 둘러싼 금품수수 사건으로 29명이 무더기로 기소되면서 여론이 들끓자 최규식 국회의원이 ‘구금된 지방의원 의정활동비 지급제한’을 규정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국회는 주민들의 입법청원, 최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 ‘심사 중’이란 팻말만 달아 2년이 넘도록 방치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회의원 자신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우려하는 것 같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구금된 국회의원의 수당지급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함께 발의돼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자 자구책을 마련하는 지방의회도 있다. 군산시의회는 ‘무단 결석 의원에 대해 월정수당·의정활동비 삭감’을 규정한 ‘시의원 윤리강령 및 윤리실천 규범 조례 개정안’을 마련, 9일 의결하기로 했다. 최동진 군산시의원은 “사법처리로 인한 결석도 본인 잘못인 만큼 수당 삭감 대상”이라고 말했다. 전남도의회는 7월, 여수시의회는 9월부터 군산시의회와 비슷한 내용의 조례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김용찬 선거의회과장은 “원칙적으로 무노동무임금이 맞다. 하지만 지방자치법상 의정활동비를 지급하라는 규정만 있고, 이를 제한하는 규정이 없어 중앙정부 차원의 규제는 어렵다”고 말했다.



 학계는 찬반이 엇갈린다.



 한양대 유재원(행정학) 교수는 “의정활동을 하라고 주는 게 의정비인데 구금으로 사실상 직무가 불가능한 의원에게까지 이를 지급하는 것은 법(지방자치법 33조)의 취지에 어긋난다. 지방자치단체장과의 형평성에도 위배된다”며 “관련법 개정 이전이라도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규정을 원용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지방공무원 보수 규정(48조)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은 구금 등으로 직무가 정지되면 3개월까지는 연봉 월액의 70%, 그 이후는 40%를 지급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울산대 이병철(행정학) 교수는 “지방의원 유급제를 도입한 목적이 임기 동안 소신껏 일하도록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인 만큼 법원의 확정판결 때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의정비를 지급해야 한다. 일 안 하는 지방의원은 다음 선거에서 주민들이 심판하면 된다”고 말했다.



 충남대 육동일(자치행정학) 교수는 “소모적 논쟁과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의정비 지급 규정을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전국종합]



◆지방의원 의정비=지방자치법 33조에는 지방의원에게 의정자료 수집과 연구에 들어가는 비용을 보전하기 위한 의정활동비, 직무활동을 위한 월정수당을 지급하도록 규정돼 있다. 울산시의원의 경우 150만원의 의정활동비와 315만원의 월정수당 등 매월 총 465만원씩의 의정비를 받고 있다. 본회의·위원회 의결, 출장 때는 별도의 여비가 지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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