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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자기· 홍산문화 예술적 가치 알리겠어요”

중앙일보 2010.11.09 00:26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김희일 서울 홍산문화 중국도자박물관장





서독광부·독일법대생·관광가이드·미술품컬렉터… 그리고 박물관장이 되어 귀국해 미술계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김희일씨(68)가 지난 3월 서울 경운동에 홍산문화 중국도자박물관을 개관하고 도자기 관련 행사를 잇달아 열며 의욕을 과시하고 있다. 김 관장으로부터 미술을 통해 살아온 삶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 보았다.



-원래 독일 광부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모두가 어렵게 살던 1970년 독일 광부로 갔습니다. 고되고 힘들었지만 일한 만큼 월급이 적지 않았습니다. 광부 생활을 마치고 그대로 눌러 앉아 보쿰대 법대에 진학했습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인식과 독일 노동자들의 자부심을 보면서 노동법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공부에만 매달리기엔 생활이 너무 힘들어 공부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찾은 일이 여행사 가이드였어요. 독일어 실력을 밑천 삼아 동료들을 대상으로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습니다.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가이드를 하다 보니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일행 중 한사람이 요한 슈트라우스 동상을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하지 못했어요. 그때의 당황했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독일에 돌아오자마자 미술사를 부전공으로 선택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일이 내가 미술인으로 살아가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독일에는 미술품 컬렉터들이 많았어요. 신문에 예술품을 매매하는 광고 지면이 따로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돈이 생기는대로 그림을 한두 점씩 사들이면서 컬렉터가 된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습니다. 어느 고성(古城)에서 열린 미술품 처분 행사에서 그림 한 점을 샀는데 바로 벨라스케스의 작품이었어요. 푸른 눈을 가진 소년의 초상화-.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정물이나 풍경화를 좋아했지 초상화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첫눈에 17세기 그림이라고 생각했어요. 17세기 명화의 대부분이 초상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작품을 품에 안고 집에 오는 내내 가슴이 떨렸던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벨라스케스의 희귀한 작품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어요. 구입가의 60배가 넘는 가격에 팔아 거금을 쥐고 어쩔 줄 몰라 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보물을 건진 듯 짜릿합니다. 그후에 내가 판 가격의 5배를 더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미술시장의 규모가 엄청나며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미술 시장에 뛰어들어 루벤스·램브란트·르누아르·칸딘스키등 작가들의 명화를 찾게 된 겁니다.



 -한국 미술을 알리는 데도 많은 역할을 하셨다면서요.



 독일 미술계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생겼을 때 ‘갤러리 킴’이라는 갤러리를 열었습니다.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어요.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작가가 해외에서 전시회를 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한국 문화를 유럽에 알리고 양쪽을 교류하는 전령사 노릇을 하게 된 거지요. 이를 바탕으로 한-독미술가협회가 만들어지고 양국 화가들의 교류가 시작됐습니다. 한국 화가를 독일에 소개한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독일 작가들의 한국 전시도 자주 마련했습니다. 1981년에는 ‘유럽 성화(聖畵)전’, 1985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독일현대도자기전’을 열었습니다.









서울 홍산문화 중국도자박물관.



-서울 홍산문화 중국도자박물관은 이름부터 생소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유럽의 어느 고성에서 우리나라 고려자기를 본 후에 유럽을 다니며 한국자기를 찾다가 중국도자기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도자기를 좋아하는데 도자기의 다양한 곡선들에서 그 어떤 것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도자기에 그려진 도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교함과 세밀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어요. 1973년부터 중국자기를 수집하기 시작해 도자기들을 사고팔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중국의 문헌들을 찾아 도자기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요. 유럽에서 중국도자기와 고대 옥기(玉器) 등을 수집해 귀국한 후에도 중국유물 수장가들과 함께 중국도자기에 대해 연구하며 좋은 도자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홍산(紅山)문화는 기원전 4700년~기원전 2900년 중국 만리장성 북동부에 존재했던 신석기 시대의 문화로 현재의 하베이(河北)성 북부에서 내몽골 자치구 동남부와랴오닝(遼寧) 성 서부에 해당합니다. 옥(玉)과 토기(土器)를 잘 활용했다고 해서 박물관 명칭에도 ‘홍산문화’를 넣은 것입니다. 현재 송(宋) 원(元) 명(明) 청(淸)나라 시대의 자기 200여 점과 홍산 문화 옥기 450여 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당초 계획은 서울 근교에 넉넉한 공간을 마련해 전시하는 것이었는데 대중이 쉽게 오가며 감상할 수 있도록 장소는 협소하지만 경운동에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서울 홍산문화 중국도자박물관을 적극적으로 알리겠습니다. 한국인·중국인은 물론 중국 도자기와 홍산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중국 도자기와 홍산문화 유물을 각기 다른 박물관을 개관해서 전시할 계획도 갖고 있어요. 지난 10월 16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중국 유물계 인사들을 초청해 성황리에 세미나를 개최하고 문물 감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이 같은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해 한국의 중국 문물 애호가들과도 정보를 공유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젊고 의욕적인 화가들을 발굴해 키울 생각입니다. 정부와 화랑들의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컬렉터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져야 합니다. 미술시장은 아직도 침체되어 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한점씩이라도 걸어놓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미술계도 활성화 될 것입니다.



 좋은 작품을 만나려면 좋은 그림을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해요. 작은 그림 한 점씩 사는 것부터 시작해 그림에 대한 안목을 늘려나가기를 바랍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나 ‘벨라스케스’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글=김민경 객원기자

사진=오수진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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