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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식지 않는 열기, 그 2라운드 … 잘났군, 막걸리

중앙일보 2010.11.09 00:24 경제 22면 지면보기






고급 막걸리, 지역 특산 막걸리 전성시대가 열렸다. 왼쪽부터 이천쌀생막걸리, 김포금쌀선호생막걸리, 배혜정누룩도가 자색고구마 막걸리, 국순당 2010햅쌀로빚은첫술, 배혜정누룩도가 우곡, 정선아우라지옥수수막걸리, 진도울금생막걸리, 참동이허브잎술, 국순당 자연담은 복분자막걸리, 청산녹수 사미인주, (아래쪽)우포의 아침 배막걸리, 예산사과생쌀막걸리, 부산금정산유기농햅쌀막걸리, 전주생막걸리, 대강소백산생막걸리, 우포의아침 탁사마. 대강주조의 오곡막걸리·둥글레막걸리·황기쌀막걸리·흑마늘막걸리.







“먹어보니 괜찮더라.” 막걸리 열풍 2년은 이 말로 정리된다. 경제 불황 때문에 값싼 술 막걸리를 슬쩍 시험해 본 사람들을 사로잡은 건, 한결 깨끗해진 뒤끝 없는 맛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국산쌀보다는 수입쌀이 여전히 판을 치던 때였다. 2년이 지나면서 수입쌀 막걸리가 슬금슬금 물러나고 국산쌀 막걸리가 대세를 잡았다. 그래서 이제 국산쌀 막걸리끼리 제대로 맞붙는 2라운드가 열렸다. ‘막걸리 2라운드’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고급화·다양화다. 국산쌀에서 햅쌀과 유기농쌀로 나아갔고, 쌀막걸리뿐만 아니라 몸에 좋은 지방 특산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병은 예뻐졌고, 맛은 더욱 신선하고 어른스러워졌다. 앞으로 몇 년간의 트렌드를 이끌게 될 2라운드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봤다.



글=이정봉 기자 ,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산쌀·햅쌀·유기농쌀 … 핵심 재료 업그레이드









서늘한 부산 금정산성 아래 국내 유일의 전통 누룩이 익어간다.



막걸리업체 금정산성토산주에서 빚어내는 부산 금정산막걸리는 전국의 막걸리를 통틀어 가장 상징적인 존재다. 부산 금정산성 아래서 400년이 넘도록 전통 누룩을 지켜 왔다. 금정산성토산주 유청길 대표는 “금정산성막걸리는 60년대 정부가 누룩 제조를 금지하자 당시 여자들은 누룩을 들고 산으로 도망치고, 남자는 단속반원들과 각목을 들고 싸우면서 지켜온 막걸리”라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서늘한 헛간 몇 군데서 누룩을 익히고 보관한다. 막걸리학교 허시명 교장은 “전국 양조장 중 전통 누룩으로 빚는 막걸리는 금정산성막걸리가 거의 유일하다”고 했다.



 수백 년 전통의 막걸리지만 이곳에도 최근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다. 뿌리 깊은 제조 방식을 고수하는 건 변함없지만, 쓰는 쌀을 바꿨다. 지난해 10월 ‘유기농햅쌀막걸리’를 출시했다. 유기농법으로 기른 경북 함양 용추미와 계약하고 5000원짜리 고급주를 내놓은 것이다. 유 대표는 “전통 방식의 누룩은 막걸리의 향을 깊게 하지만,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쌀 그 자체가 좋아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고급 국산쌀을 사용해 막걸리를 빚기 시작한 곳은 여기뿐만이 아니다. 전통주 제조업체인 국순당은 지난달 ‘2010 햅쌀로 빚은 첫술’ 막걸리를 내놓았다. 배혜정누룩도가도 유기농 경기미를 쓴 우곡 막걸리를 내고 있다. 배혜정 대표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유기농 국산쌀만을 고집한다”며 “6도에 맞춰진 막걸리 알코올 함량도 높여 차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룩 속 살아있는 효모가 당분을 먹고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내놓는다.







 이천쌀·김포쌀 등 전통적으로 좋은 쌀을 생산하는 지역에서도 막걸리를 빚기 시작했다. 이천시와 경기도농업기술원은 지방의 전통 양조장인 오성주조와 함께 지난달 ‘이천쌀생막걸리’를 내놓았고, 김포탁주에서도 ‘김포금쌀막걸리를 지난 5월 출시했다. 음식칼럼니스트 박정배씨는 “최근까지 막걸리를 빚었던 쌀은 중국·동남아시아 등에서 의무수입량으로 수입됐던 쌀”이라며 “쌀이 달라진 것이 막걸리붐이 일고 난 이후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막걸리는 막 거른 술이라 원재료의 맛이 가장 중요하다. 막걸리업체들이 국내산 쌀, 그중에서도 고급 쌀을 찾는 이유다. 배상면주가 배영호 대표는 “청주·소주 등 모든 우리 술의 근본은 막걸리”라며 “쌀·누룩·물로만 빚어 그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청주는 막걸리의 침전물을 걷은 맑은 술, 소주는 이를 증류한 술이다. 허시명 교장은 “지난 8월 ‘농산물 원산지 표시제’가 시행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막걸리 뒷면 라벨에는 원재료가 국내산인지 수입산인지 명시돼 있다.









전통 누룩과 쌀이 만나 걸쭉한 막걸리가 된다.



 쌀로 빚은 막걸리는 신선한 맛이 난다. 쌀의 달착지근한 향과 시원한 청량감이 잘 어우러졌다. 옛적 시금털털하고 텁텁한 맛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래서 70~80년대 막걸리를 들이켜 왔던 중년층은 “옛 맛이 사라졌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박정배씨는 “70년대 유행했던 막걸리는 대부분 카바이드로 속성발효시켜 시금털털하고, 이를 보완하려고 단맛이 나는 사카린을 넣어 텁텁했다”고 설명했다.



 원재료가 고급화하면서 막걸리 병도 한결 세련되게 바뀌고 있다. 천편일률적으로 페트병에 담던 막걸리는 유리병에 담기면서 새하얀 빛깔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누룩 연구하고, 사과·울금·복분자 ‘특산물’ 섞고









금정산성토산주 유청길 대표가 갓 나온 막걸리를 맛보고 있다.



쌀의 고급화와 더불어 제조 과정에 과학적 방법이 접목되고 설비도 현대화하고 있다. 누룩을 균질화하려는 시도다. 막걸리 특유의 향과 개성은 누룩에 달려 있다. 누룩은 균덩어리인데 막걸리를 빚는 과정에서 잡균이 섞이는 경우가 많아 일정한 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 한군데서 배양한 누룩으로 같은 쌀을 담가도 철에 따라, 양조장의 위치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건 이런 이유다. 거의 모든 업체가 일본식 누룩으로 막걸리를 빚는 것도 문제다.



 1918년부터 막걸리를 빚어 왔던 충북 제천 대강주조는 막걸리의 맛을 살리면서도 균일한 향을 내는 누룩을 배양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대강주조의 막걸리는 밀과 쌀을 적절히 조화시켜 빚기 때문에 깊고 묵직한 맛을 낸다. 대강주조 조재구 사장은 “올해 미생물학 전공 연구원을 채용해 일정한 맛을 낼 수 있는 효모를 추출하고 있다”며 “깊은 맛을 내기 위해 밀과 쌀의 황금비율을 찾는 연구도 함께 한다”고 말했다. 막걸리를 빚는 과정에서 다른 균이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에어커튼을 설치한 설비도 올해 새로 들였다.



 전남대 생명화학공학부 김진만 교수가 대표이사인 전남 장성의 막걸리업체 ‘청산녹수’는 경험에 의존하는 전통 양조 방식에서 벗어나 ‘블렌딩 기술’을 통해 막걸리를 빚고 있다. 막걸리 ‘사미인주’는 기존 발효 기간보다 배 이상 긴 20~25일 동안 숙성해 막걸리인데도 탁주라기보다 청주에 가까운 맑은 맛을 낸다. 국순당·배상면주가·배혜정누룩도가 등 전통주업체들도 들쭉날쭉한 성질의 전통 누룩을 연구를 통해 개량해 쓰고 있다.



 막걸리 선택의 폭 자체도 넓어졌다. 지역 특산물을 막걸리에 접목하면서 칵테일만큼이나 다양한 막걸리가 인기를 끌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막걸리붐이 일기 직전인 2~3년 전에 출시된 막걸리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막걸리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짜낸 지방 양조장들의 아이디어가 때를 만났다.









일본식 누룩(위)과 전통 누룩(아래). 전통 누룩에는 균이 골고루 퍼져 푸른 빛을 띤다.



 지리산그린영농조합 운봉주조에서는 허브를 넣은 ‘참동이허브잎술’ 막걸리를 지난해 내놓았다. 전북 남원 허브특구지역에서 나온 잎을 따다 만들어 신선한 향이 일품이다. 최봉호 사장은 “입소문을 타고 지난해보다 매출이 30% 정도 올랐다”며 “차별화하기 위해 지역특산물인 허브막걸리를 택했는데 막걸리붐과 시기가 맞았다”고 말했다. 군산양조공사의 지역특산물 흰찰쌀보리로 빚은 막걸리뿐만 아니라 진도 울금막걸리, 정선 옥수수막걸리, 예산사과막걸리 등 특산물 막걸리도 쌀막걸리 못지않게 인기를 끈다.



 그러자 국순당·배상면주가 등에서도 특산물을 이용해 막걸리를 빚고 있다. 모두 전북 고창의 1등급 복분자를 이용한 고급 막걸리를 내놓았다. 국순당은 ‘자연담은’ 복분자 막걸리를 올 8월 출시했다. 배상면주가도 올 추석에 고급 복분자 막걸리를 명절 선물세트로 출시했다. 국순당 고봉환 팀장은 “복분자의 부드러운 맛이 막걸리와 잘 어울려 선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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