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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다, 저 아줌마 감독의 꿈과 열정

중앙일보 2010.11.09 00:19 종합 29면 지면보기



영화 ‘레인보우’ 신수원 감독



30대 후반 아줌마 감독의 실패담을 그린 저예산 영화 ‘레인보우’의 신수원 감독. 중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늦깎이 감독이 된 자신의 사연을 진솔하게 녹였다. [최승식 기자]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직장을 그만둔 지완(박현영). 마흔이 코 앞인데 아직 ‘입봉(데뷔)’은 남 얘기다. 3년간 붙든 시나리오는 15번이나 수정했다. 남편(김재록)은 “너는 루저”라며 화를 내고, 밴드 활동을 하겠다는 사춘기 아들(백소명)은 냉담하다. 아줌마 감독의 늦은 꿈, 과연 이루어질까.



 18일 개봉하는 음악영화 ‘레인보우’다. 지완은 연출자 신수원(43) 감독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그는 서울대 독어교육과 졸업 후 중학교 사회교사로 10년 넘게 일했다. 영화계 문을 두드린 건 2000년. “2년간 없이 살면 된다”는 각오로 휴직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과정에 진학하면서다. 100만원으로 첫 단편을 찍었다. 연출이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교에 사표를 내고 영화사 의뢰로 시나리오를 썼다. 감독 데뷔도 준비했지만 번번이 불발됐다.



 예산 4700만원이 든 ‘레인보우’는 “이번에 안 되면 이젠 접자”는 심정으로 퇴직금 2500만원을 보태 제작·각본·연출 1인3역을 맡은 작품이다. 어느 날 읽은 영화천재 스티븐 소더버그(47) 감독의 말이 가슴 속 불씨를 다시 살려냈다. “당신이 진정으로 원한다면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지 마라.”



 영화 속 지완은 끝내 데뷔하지 못한다. 반면 그는 꿈을 이뤘다. 올 4월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 장편부문 최고상인 J J 스타상을 탄데 이어 최근 폐막한 도쿄국제영화제에서도 23편이 경합한 ‘아시아의 바람’부문 최고상을 받은 것.



 “그 동안 가족들에게 참 미안했죠. 영화 만든다고 매일같이 밤늦게 들어오고 밤샘 촬영하고. 집안 일은 주말에 몰아서 했으니까요. 아마 남편이 저한테 ‘퇴직금으로 영화 만들겠다’고 했으면 전 펄펄 뛰었을 것 같아요.” (웃음)



 물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내 나이가 몇인데, 언제까지 이래야 되나 싶었죠. 촬영 들어가서도 몇 번이나 그만둘까 하는 유혹을 느꼈어요. 이 돈으로 차라리 집을 넓힐까, 아이들 데리고 유럽여행을 갈까 싶기도 했어요.”



 그를 버티게 했던 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는 절실함이었다. “데뷔작으로 다음 작품 만들 발판을 마련해야지, 이런 계획은 없었어요. 무조건 완성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죠. 소위 ‘엎어진’ 영화라도, 준비하는 과정엔 완성된 영화 못지 않은 땀과 열정이 배어있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자전적 요소가 강한 ‘레인보우’의 상황 묘사는 리얼리티 만점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 상황, 참신한 대사와 인디밴드 에브리싱글데이가 곳곳에 배치한 감각적인 음악이 상승 효과를 일으킨다. “이런 정신병자 같은 판타지를 누가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지완을 다그치는 최PD(이미윤)를 중심으로 한 시나리오 수정 과정은 상당 부분 감독의 경험에서 나온 것. 아들이 “아빠는 엄마 때문에 극장도 안 가”라고 노래하는 장면, 참다 참다 화가 치민 남편이 카메라 배터리를 부수는 장면 등은 기혼여성이 뒤늦게 꿈을 이루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보여준다.



 “흔들릴 때마다 영화 만드는 게 지금의 제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졌어요. 영화 만드는 건 중독성이 강해요. 애 낳는 거랑 비슷하죠. 과정은 죽을 것 같지만 결과물이 나왔을 땐 정말 뿌듯해 또 하고 싶거든요.”



 활짝 웃는 그를 보며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원하는 자만이 꿈을 이룬다.’ 맞는 말이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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