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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절약 몸에 밴 미국인들 … 미 경제 속앓이

중앙일보 2010.11.09 00:17 경제 4면 지면보기






정경민 뉴욕 특파원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사는 버니 디셀즈 부부. 미국을 덮친 경제위기에도 맞벌이로 자기 집을 지켜냈다. 하지만 씀씀이에선 달라진 게 많다. 우선 외식이 사라졌다. 싸구려 할인점에 가면 전엔 뭐든 마음에 드는 게 눈에 띄면 기계적으로 쇼핑카트에 담았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집에서 미리 적어 간 쇼핑 리스트에 없는 물건엔 눈길도 안 준다. 즐겨보던 TV 홈쇼핑 프로그램도 안 본다.



 서민만 그런 게 아니다. 뉴욕 맨해튼 사교계에서도 이름 있는 앨리슨 브래디. 그는 올가을 옷을 한 벌도 안 샀다. 옷은 유행을 심하게 타기 때문이다. 대신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시계와 가방만 몇 가지 샀다. 그의 주변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입었던 파티복을 ‘재탕’하거나 디자인만 살짝 바꿔 다시 입는 친구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하루 저녁 파티에 일주일은 먹어도 될 만큼 쌓아놓던 음식과 와인도 어느새 ‘다이어트’ 대상이 됐다.



 미국 현지 언론이 전하고 있는 요즘 미국 소비실태다. 미국인의 소비는 세계적으로도 알아줬다. 경제가 잘나갈 땐 모기지(주택담보) 대출이 씀씀이를 뒷받침했다. 금융회사는 집값보다 더 많은 대출금을 선뜻 내줬다. 집값이 계속 올랐기 때문이다. 매달 갚아야 할 신용카드와 주택담보대출 빚이 소득의 1.4배에 달했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후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흥청망청했던 분위기는 옛말이다. 일시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맨 게 아니라 생활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콧대 높던 맨해튼의 최고급 백화점도 자존심을 꺾고 있다.



 이런 변화 때문에 미국 경제 회복이 생각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잠깐 씀씀이를 줄인 거라면 소득이 늘면 회복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예 생활방식이 달라졌다면 소득이 늘어도 소비는 빨리 살아나지 않는다는 거다.



 미국 경제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한다. 소비가 회복되지 않고선 미국 경제의 회복은 요원하다. 어쩌면 이번 경제위기가 앞으로 세계경제에 미칠 영향 중 가장 의미 있는 요소는 미국이란 ‘소비 용광로’가 식어버린 게 아닐까 싶다.



정경민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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