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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압수수색

중앙일보 2010.11.09 00:08 종합 39면 지면보기








1791년 공포된 미국 수정헌법은 4조에서 부당한 압수(押收)와 수색(搜索)을 금지했다. “신체, 가택, 서류 및 재산을 보호받기 위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며 ‘상당한 이유(probable cause)’와 영장이 있을 때로 압수수색을 제한했다. 국가권력이 개인 사생활 영역에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미 연방대법원은 ‘상당한 이유’에 대해선 폭넓게 용인하는 판례를 세웠다. 1987년에는 범죄 현장에서 어느 정도의 범죄 관련성만 있어도 영장 없이 수색이 가능하다는 이른바 ‘가시(可視) 범위의 원칙(plain view doctrine)’도 인정했다. 압수수색이 진술 증거보다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수사기법이기 때문이다.



 수정헌법 4조의 정신은 우리나라에 제헌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도입됐다. 미 군정은 1948년 ‘조선인민의 권리에 관한 포고’를 통해 “주거는 불가침이며, 인민의 인신(人身), 문서, 재물을 불합리한 압수나 수색에 대해 보장할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밝혔다. 곤장과 자백으로 단죄하던 조선시대의 관행을 깬 조치였다. 현행 우리 헌법상 압수수색에는 영장을 요구하고 있다.



 ‘자백은 증거의 왕’이라는 시대는 지났다.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무죄 판결이 난 한명숙 전 총리의 사건처럼 관련자의 ‘입’에만 의존하다가는 망신당하기 일쑤다. 요즘 압수수색에선 자백이나 종이 문서와 같은 아날로그 증거보다 디지털 증거를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해졌다. 하드디스크에서 휴대전화·USB·PDA를 포함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전자정보를 제때 잡아내는 게 핵심이다.



 기업과 정치인에 대한 동시다발적이고 전방위적인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말들이 많다. 청원경찰 단체의 후원금과 관련된 의혹을 사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반발은 특히 거세다. 국내에선 이미 국회의원 의원회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여러 차례 있었다. 올 초 일본에선 도쿄지검 특수부가 민주당의 최대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의 자금관리 사무실을 뒤졌다.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불법 행위의 혐의가 있으면 압수수색하는 게 정상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식으로 괜한 오해를 조장한다며 ‘과잉 수사’라고 정치권은 비판한다. 압수수색 영장은 판사가 발부한다. ‘범죄행위에 연관된 상당한 이유와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때’ 말이다. 마구잡이식 압수수색은 곤란하지만 정치인이라고 일반인과 다르게 접근해야 할 이유는 없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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