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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Best 20-② 3대 가업 ‘예화랑’ … “신진작가 발굴·해외진출 확대”

중앙일보 2010.11.09 00:04 주말섹션 8면 지면보기






예화랑 전시장 내부. [신승희 프리랜서]



우리나라에서 현대적인 상업화랑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이다. 그때부터 30여년간 화랑가의 역사를 일구며 단단한 입지를 다져온 갤러리들이 있다. 올해 개관 40주년을 맞은 갤러리현대(1970)를 비롯해 조선화랑(1971)·진화랑(1972)·동산방화랑(1976)·선화랑(1977)·예화랑(1978) 등이다.



 이들은 한국 미술계의 선구자들이다. 2000년대 들어와 설립자의 2세들이 적극적으로 화랑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점도 공통적이다. 특히 예화랑은 3대째 가업으로 이어 오고 있다.



 예화랑의 뿌리는 1954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청계로에 있던 천일백화점 내 4층에 ‘천일화랑’이 개관했다. 일본 동경의 태평양미술학교 도안과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돌아와 천일백화점 지배인을 거쳐 사장까지 역임한 고 이완석이 설립한 것이다. 그가 바로 지난 8월 별세한 고 이숙영 예화랑 대표의 부친이다. 예화랑은 1978년 인사동에서 시작해 1982년 강남으로 이전했다.



 천일화랑은 반년만에 아쉽게 문을 닫았지만 폐관 이후 같은 장소에 ‘한국 민예품 연구소’를 만들고 1946년에는 ‘산업미술협회’를 창립하는 등 미술계 활동을 계속했다. 천일화랑은 6.25 한국전쟁 직후에 미술을 공부한 전문인이 설립한 화랑이라는 점에서 국내 화랑 중 남다른 위치를 차지했다.



 작고한 이숙영 대표의 장녀로 예화랑의 실무 책임을 맡고 있는 김방은 실장은 “외할아버님이 어머님이 대학생일 때 돌아가셔서 뵌 적은 없지만 고가구·고서화·동양화·서양화 등 미술품으로 가득했던 외갓집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미술을 접하며 자랐다”고 한다.



 어머니는 서양화를, 이모인 이승희 부대표는 동양화를, 둘째 이모는 조소를 각각 전공했다. 김 실장의 부친인 김태성 예실업 대표 역시 미술사랑이 대단한 분이다. 1983년 한국화랑협회장을 맡았을 때 부인과 이 부대표와 함께 ‘미술시장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세미나’를 주관하기도 했다.



 이런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장녀인 김 실장의 미술대학 진학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대학 졸업 후 학자와 갤러리스트를 놓고 고민하던 그는 런던 에섹스대학 대학원에서 갤러리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미술사를 보다 깊이 있게 공부하기로 했다.









이승희 부대표와 김방은 실장(왼쪽). [신승희 프리랜서]



귀국 후 1997년부터 약 7년 간 대학 강의와 갤러리 업무를 병행하면서 자신이 갤러리스트로서의 일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앞으로도 꾸준히 즐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어머님께서 단 한 번도 갤러리스트를 강요하신적은 없어요. 스스로 즐길 수 있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셨기 때문에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만 하셨죠. 제가 물려받은 가장 큰 재산이기도 해요. 열정적으로 미술을 좋아할 수 있어야만 작품을 다룰 수 있다는 운영철학이지요.”



 1992년 스페인 최대의 아트페어인 아르코(ARCO)에서부터 프랑스의 피악(FIAC), 오늘날 도쿄아트페어의 전신인 니카프(NICAF), 독일의 아트쾰른 등 굵직한 해외아트페어에 참가했다. 앞으로는 뉴욕·홍콩 등 현대미술 중심지에 보다 활발하게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김 실장은 오래 전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갤러리 업무를 진행해 왔다고 말한다.



 “해외 아트페어에는 매년 참가하려고 노력합니다. 국내의 경우 설치가 복잡하거나 보관이 어려운 작품의 구입을 주저하는 분들이 많지만 뉴욕처럼 컬렉팅 역사가 오래된 곳에서는 실험적인 작품을 사는 일을 어려워하지 않아요. 다행히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작품과 작품이 걸릴 공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감상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올해로 갤러리 업무를 시작한 지 이승희 부대표는 30년, 김 실장은 12년째가 된다. 김실장은 “화랑이 설립된 지 올해로 32년째에요. 오지호·유영국·장욱진 같은 작고작가에서부터 곽훈·김종학·이강소 등의 원로작가는 물론 최인선·김원숙·양만기 등의 중견작가를 포함하는 폭넓은 전시를 해왔습니다. 제 세대에서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은 지금까지 추구해 온 화랑의 방향을 이어나가면서 새로운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모색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전시를 할 수 없더라도 젊은 작가들을 항상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리서치하는 작업이 중요하죠.”



 이승희 부대표 역시 같은 생각이다. “장르 구분 없이 창의적이고 독창성 있는 작가를 발굴해서 전시하고 싶다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어요.”



 작고한 이 대표가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다양한 사업들을 이어나가는 것 또한 이 부대표와 김 실장의 몫이다. “작고한 대표께서 2006년 시작된 서울오픈아트페어(SOAF) 창립멤버셨어요. 화랑이 아닌 백화점이나 관공서에서 전시를 개최하기도 하셨구요. 기업이나 공공기관 안팎에 공공미술품을 설치하는 일에도 열심이셨죠. 본인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작품 설치를 구상하는 일을 항상 즐기셨어요.”



2005년 현재의 갤러리 건물을 신축할 때에도 이 대표는 장운규 건축가와 함께 설계를 구상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이제는 제가 맡아야죠. 지금까지 일궈온 갤러리의 맥을 잘 이어가는 일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실장의 부드러운 목소리 속에 단호함이 느껴졌다. 지난 10월 28일까지 열렸던 전시 ‘권영호의 패션포토그라피’는 이런 김 실장의 포부를 잘 드러냈다. 영화·패션·광고·다큐멘터리 등의 영역을 넘나들며 작업하는 권 작가의 특징은 물론 전시 수익금 일부를 한국의 다문화가정을 지원하는 기부금으로 사용하기로 한 계획 또한 지금의 예화랑이 그리고 있는 청사진과 잘 어울렸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차가운 느낌을 받게 되는 분위기가 저는 싫었어요. 신사동 가로수길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장소가 되어서 그런지 날이 갈수록 갤러리 또한 액티브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누구나 동네 산책 나오듯이 편한 복장으로 슬리퍼 신고도 드나들 수 있는 그런 인터랙티브한 공간으로서의 갤러리를 만들고 싶어요.”



 갤러리 문을 나서며 집어든 카드엔 ‘그저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만이 예술이 아닌 결국 삶과 함께 빛나야 예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시고 떠나셨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카드에 인쇄된 사탕 꽃 사진작가 구성연의 작품만큼이나 화사했던 김 실장의 미소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아직 예화랑에 가보지 못했다면 언제든 신사동으로 발길을 옮겨 보기 바란다. 운동복 차림이어도 상관없다. 미술을 좋아하는 진심만 챙겨 가면 언제든 환영이다.



글=김새미 객원기자

사진=신승희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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