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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중공군 참전이 없었더라면

중앙일보 2010.10.31 21:57 종합 38면 지면보기






정치전문기자



한국 역사에서 10·26은 격동의 날이다. 1909년엔 안중근 의거(義擧), 79년엔 박정희 시해(弑害)가 있었다. 50년 한국전쟁 때엔 국군 병사가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았다. 그때 통일이 됐으면 10·26은 ‘국토 수복의 날’이 됐을 것이다. 그 10·26 일주일 전에 중공군은 조·중 국경을 넘어 한반도를 침략하기 시작했다.



 중공군의 참전은 국제법적으로는 불법이요 인류사적으로는 반(反) 문명적 행위였다. 북한이 6·25를 일으킨 것과 그런 북한이 패전에 처하자 중국이 참전한 것 모두가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런데도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은 6·25의 성격을 왜곡하고 중국의 참전을 ‘정의’로 미화했다. 그는 “조선의 내전이 발발한 이후 미국 트루먼 정부는 제멋대로 파병을 결정해 간섭, 조선에 전면전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적으로 잘못된 역사인식이다. 미국은 유엔 결의를 통해 파병했으며 전면전을 일으킨 건 북한이다. 북한의 전쟁을 후원했던 러시아조차 지금 남침을 인정한다. 러시아 대학교재들은 74년 북침이라고 썼다가 2008년 남침으로 고쳤다.



 중공군 참전에 대한 중국의 역사인식도 올바르지 못하다. 시진핑은 “(미국은) 중국 정부의 수차례 경고를 무시하고 38선을 넘어 중·조 국경인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쳐들어왔으며, 전투기를 보내 우리 동북 변경의 도시와 농촌을 폭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엔군이 38선을 넘고 압록강까지 진격한 건 유엔 결의의 정신에 따른 것이었다. 유엔은 남침을 ‘평화 파괴’로 규정하고 참전 결의를 통해 북한을 격퇴할 것을 선언했다. 이런 유엔의 정신은 전쟁 내내 적용되는 것이었다.



 중국은 유엔군이 중국의 국경을 압박했다고 하나 유엔군이 조·중 국경을 넘지 않는 한 중국이 한반도에 진군할 권리는 없었다. 그리고 폭격이 있었다고 주장하나 일부 오폭(誤爆)이 있었을 뿐이다. 고의적인 폭격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시진핑은 또 북한의 요청이 있었다고 하는데 우방국이라 해도 정의롭지 못한 전쟁을 돕는 건 역시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에는 10~20년 앞서 인구 6000만~7000만의 자유민주 시장경제 국가가 등장했을 것이다. 폐쇄되고 뒤처진 나라의 이웃에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는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한국의 압축성장에는 일본이라는 자유민주-시장경제 대국이 주요한 영향을 끼쳤다.



 자유·민주의 바람이란 막기 어려운 것이다 (북한은 지독한 예외다). 전 세계가 참가한 88 서울 올림픽을 통해 자유세계의 바람이 공산권에 들어갔다.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90년 독일이 통일됐으며 이어 소련과 동구권이 해체됐다. 중국에서도 89년 천안문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사태가 터졌고 중국의 개혁·개방은 더욱 동력을 얻었다.



 중공군 참전이 없었다면 ‘자유민주 통일한국’의 바람이 한·중 국경을 두드렸을 것이다. 그러면 중국엔 문화대혁명(66~76년)이라는 거대한 퇴보(退步)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78년)도 훨씬 빨랐을 것이며 중국은 20세기 말에 이미 G2가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을 굶기고 죽이는 북한 세습독재의 거악(巨惡)이 인류사에 없을 것이다.



 중공군이 참전해 세계인(유엔군)에게 살상행위를 한 것은 잘못된 전쟁이었다. 시진핑과 중국은 이제 국제법과 인류문명이라는 관점에서 전쟁을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공군의 잘못된 참전으로 수많은 유엔군과 한국인이 희생되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어느 나라나 ‘잘못된 전쟁’을 저지른다. 문제는 이를 인정할 용기가 있느냐다. 맥나라마는 베트남 전쟁 때 미국의 국방장관이었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베트남 전쟁은 잘못된 전쟁이었고 이를 후세에 알려야 한다고 적었다. 미국이 위대한 나라인 것은 이런 지도자가 있기 때문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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