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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과 열한 번의 자살 기도, 벼랑 끝서 인생 역전 홈런

중앙선데이 2010.10.31 11:53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2010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의 영웅 조시 해밀턴







조시 해밀턴이 10월 2일(한국시간) 텍사스의 알링턴 구장에서 열린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와의 홈경기에서 자신이 친 타구를 바라보고 있다. 시련을 딛고 일어선 그의 이미지는 로버트 레드퍼드가 주연한 영화 ‘내추럴’의 주인공 로이 홉스를 연상시킨다. [알링턴 AP=연합뉴스]



야구 경기는 숫자에 대한 강박증이 심한 종목이다. 확률, 통산, 평균. 오늘도 기사는 숫자로 시작된다. 8. 11. 26. 독자는 이 숫자들을 보고 무엇을 떠올릴지 궁금하다. 8번 타자? 명장 스파키 앤더슨(11)과 웨이드 보그스의 배번(26)?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 이 숫자들은 여덟 차례 약물 중독 재활센터에 다녔고, 열한 차례 자살을 시도했으며, 몸에 스물여섯 개의 문신이 있는 메이저리그의 야구 선수를 만나기 위한 키워드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천재성을 증명했지만 드러냈지만 교통사고와 약물과 알코올에 젖은 채 방황하며 아스라한 불꽃처럼 사라지는 듯했던 사나이. 나이 서른을 바라보는 올해에야 비로소 빛을 내뿜으며 황홀하게 타오른 2010년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의 영웅 조시 해밀턴(29)이다.



1984년 베리 로빈슨 감독이 버나드 맬러머드의 소설(1952년작)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내추럴(작은 사진)’은 야구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19세 청년 로이 홉스(로버트 레드퍼드 분)의 이야기다(‘내추럴(natural)’에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란 의미가 있다). 로이는 메이저리그 구단 시카고 커브스에 입단 테스트를 받기 위해 고향 네브래스카를 떠난다. 그러나 로이는 불의의 사고로 총을 맞고,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게 된다.



16년 뒤, 로이는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35살의 나이로 최하위 팀 뉴욕 나이츠에 입단한다. 그는 팀의 매각을 위해 패배를 원하는 구단주의 압박과 배에 박힌 총알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경고를 무시한 채 연일 맹타를 휘두른다. 영화는 로이가 최고의 왼손 투수를 상대로 친 홈런타구가 경기장의 조명을 터트려 불꽃을 일으키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소설 내추럴이 세상에 태어난 지 반세기가 지난 뒤 미국인들은 로이 홉스와 같은 야구선수를 현실에서 보게 된다. 1999년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전체 1라운드로 지명된 외야수 조시 해밀턴은 2002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야구를 할 수 없을 만큼 심한 통증에 시달린다. 괴로움과 좌절감을 이기지 못한 그는 술과 마약에 빠졌다. 그러나 가족과 종교의 힘으로 다시 야구를 시작했다. 2007년에야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그는 3년이 지난 2010년 아메리칸리그(AL) 타격왕을 거머쥐며 소속팀 텍사스 레인저스를 창단 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올려놨다.













1999년 메이저리그 아마추어 드래프트 최고의 유망주는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 출신의 조시 해밀턴이었다. 그는 당시 투수 최고 유망주였던 조시 베켓(보스턴 레드삭스)을 제치고 전체 1번으로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에 지명됐다. 탬파베이는 계약금으로 그에게 396만 달러(약 45억원)라는 거액을 안겼다.



99년 단숨에 마이너리그 2단계(루키리그·하위 싱글A)를 거친 해밀턴은 2000년 상위 싱글A 사우스 애틀랜틱리그에서 92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2, 13홈런, 62타점, 14도루를 기록하며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USA투데이와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2000년 최고의 유망주로 해밀턴을 지목했다. 2001년에는 더블A로 올라간 스무살의 외야수는 1, 2년 내 곧 메이저리거가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순간의 사고가 그의 인생을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해밀턴은 2002년 시즌을 앞두고 열린 봄철 강화훈련 기간 중에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아무도 죽지 않았고 심하게 다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해밀턴은 등과 허리에 심한 고통을 느꼈고, 통증은 18개월 동안 쉬지 않고 이어졌다. 해밀턴의 부모는 사고를 당한 뒤 고향으로 돌아갔고, 홀로 남은 해밀턴의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는 문신 가게에 들렀다. 그곳에서 마약 중독자, 알코올 중독자들과 어울리며 코카인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고통을 잊고자 환각을 위해 사용한, 금지약물이다. 그 사이 해밀턴의 몸은 26개의 문신으로 뒤덮였고 갖고 있던 돈은 다 떨어졌다. 가족은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약물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아내와 가족들에게 한때 버림 받아

해밀턴은 2005년 10월 6일을 잊지 못한다. 그를 다시 야구계로 돌아오게 만든 날이기 때문이다. 아내 케이티를 비롯해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해밀턴은 할머니 메리 홀트를 찾아갔다. 할머니는 모두가 해밀턴을 외면했을 때 그를 받아들였다. 교회에 다닐 것을 권유했고, 심리 치료와 약물 극복 프로그램에 다닐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해밀턴은 재활 치료를 하면서도 자살을 시도했다. 금단 현상이 그를 괴롭혔다. 이젠 할머니조차 그를 버릴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됐다. 해밀턴의 할머니는 그에게 “넌 네 자신을 죽이고 있어. 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도 죽이고 있다. 그리고 나도 죽이고 있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정신이 바짝 났다. 해밀턴은 “그게 나에게 온 마지막 빛이었다”며 그때 복귀를 결심했다고 훗날 말했다.



8번이나 재활 교육을 받았지만 11번의 자살을 시도한 손자를 바로잡기 위한 할머니의 꾸짖음은 해밀턴의 영혼을 바꾸었다. 그는 방망이를 다시 잡았다. 플로리다주 클리어워터에 있는 베이스볼 아카데미에 가서 그곳에서 잔디깎기와 화장실 청소를 했다. 그리고 아카데미 수강생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훈련을 시작했다. 할머니가 건넨, 마지막 빛. 그는 지금도 “믿음은 내게 희망의 빛”이라고 되뇌인다. 믿음(faith)이라는 단어는 지난해 그의 자서전 제목 ‘믿음을 넘어서(Beyond the Faith)’로 이어진다.



독립리그에서 근근이 선수생활을 이어가던 해밀턴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복귀를 요청했다. 사무국은 한 달에 3번 약물 검사를 받는다는 조건 아래 그의 탬파베이 복귀를 허용했다. 2006년 12월 해밀턴은 룰5 드래프트(3년 이상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은 마이너리거들을 다른 팀이 지명할 수 있는 제도)를 통해 시카고 커브스를 거쳐 신시내티 레즈로 둥지를 옮겼다. 내추럴의 주인공 로이가 35세에 제 자리를 찾은 것보다는 훨씬 이른 27세 때의 일이었다.









해밀턴과 고교시절 은사 클레이 카운실(오른쪽). 카운실은 해밀턴이 2008년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 출전했을 때 마운드에 올라 배팅볼을 던져 주었다.





해밀턴은 2007년 시범경기에서 타율 4할3리를 기록하며 모두를 놀라게 하더니 개막전 25인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90경기에 출장해 타율 0.292, 19홈런, 47타점. 팬들은 해밀턴에게 박수를 보냈고, 남편 곁을 떠났던 아내와 두 딸도 그가 뛰는 경기장을 찾았다. 해밀턴은 야구를 통해 다시 가족과 행복을 되찾았다. 그는 경기 종료 후 곧바로 유니폼을 갈아입지 않는다. 유니폼을 입은 채 구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간다. 다시 돌아온 선수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즐기고 싶어서다.



술 멀리하려 우승 샴페인도 피해

2007년 12월 텍사스 레인저스와 신시내티 레즈는 투수 에디슨 볼케스와 해밀턴을 트레이드했다. 해밀턴은 텍사스에서 자신의 재능을 꽃피웠다. 로이가 방망이에 ‘Wonder Boy(원더 보이)’란 이름을 붙인 것처럼 자신의 방망이에 ‘Dream(꿈)’이란 글씨를 새긴 해밀턴은 폭발적인 타격을 펼치며 텍사스의 4번 타자로 자리 잡았다. 이적 첫 해인 2008년 그는 32개의 홈런에 3할4리의 타율로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팬들은 올스타 투표에서 해밀턴에 몰표를 던졌다.



2008년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 출전한 해밀턴이 타석으로 걸어가는 순간 백발의 노인이 배팅볼을 던지기 위해 마운드로 걸어올라갔다. 71세의 클레이 카운실. 카운실은 해밀턴이 다닌 애튼즈 드라이브 인근의 고교 야구부 코치 겸 배팅볼 투수로 해밀턴의 고교시절 개인타격 훈련을 위해 배팅볼을 던져준 인연이 있었다. 해밀턴은 그에게 메이저리그 올스타 홈런 더비에 나가게 되면 초청하겠다고 약속했고, 10년이 지난 뒤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지켰다. 카운실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야구에 대한 열정을 그는 그라운드에서 제대로 보여준다. 1m93㎝, 111㎏의 미식축구 선수가 무색할 거구로 외야 워닝트랙(외야수들의 펜스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표식) 앞에서 과감하게 다이빙 캐치를 시도한다. 담장에 부딪히면서 점프 캐치하는 것은 예사다. 거구의 홈런 타자와 빠른 발의 똑딱이 타자로 구분이 되어버린, 현대야구에서 놀라운 스피드와 장타력을 뽐낸다.



그러나 2009년, 해밀턴에게는 다시 한 번 위기가 닥쳤다. 해밀턴은 6월 복부 수술 이후 허리 통증을 비롯해 잔부상이 겹쳐 89경기만 뛴 채 시즌을 일찌감치 접었다. 그해 가을에는 해밀턴이 한 바에서 취한 듯한 모습의 사진이 공개됐다. 해밀턴은 그의 아내와 가족, 팀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바에 갔으나 음주는 하지 않았다”던 그는 곧바로 이어진 메이저리그의 약물 테스트를 통과했다(음성 판정).



2010시즌 개막 후 해밀턴은 주변의 믿음에 부응했다. AL 타격(0.359) 1위, 장타율 1위 타이틀을 손에 넣었고 홈런도 32개나 때려냈다. 텍사스는 해밀턴의 활약에 힘입어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텍사스는 디비전시리즈에서 올 시즌 최고 승률을 기록한 탬파베이를 3승2패로 누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해밀턴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지난해 챔피언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동료들의 배려에 보답하듯 홈런 4개를 몰아치며 MVP에 올랐다. 텍사스 동료들은 해밀턴을 위해 AL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을 기념하는 파티에서 샴페인 대신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음료수로 축하했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일주일 전 디비전시리즈 진출이 확정됐을 때 샴페인 파티에 나가지 않고, 혼자서 트레이너실에 있었다. 혹시 머리에 부어져 입가로 흘러내리는 알코올 한 방울이 또다시 자신의 의지를 꺾진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4승2패로 양키스를 물리친 텍사스는 60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올라 샌프란시스코와 대결하고 있다. 텍사스는 원정 2연전에서 모두 졌지만 31일부터 홈에서 3연전을 한다. 텍사스가 흐름을 뒤집으려면 1, 2차전에서 8타수 1안타로 주춤한 해밀턴의 방망이가 폭발해야 한다. 내추럴의 주인공 로이가 맞이했던 결정적인 순간이 해밀턴에게도 다가왔다.



김성원 기자 rough197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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