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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의 경제세상] 태광 편법상속에서 무얼 배울까

중앙선데이 2010.10.31 03:24 190호 2면 지면보기
검찰이 수사 중인 태광그룹은 편법 증여 및 상속 의혹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렇다. 오너 회장은 자신이 100% 소유한 비(非)상장사를 설립했다. 티알엠과 티시스 등이다. 이 회사가 증자할 때 오너는 실권을 했다. 그 지분을 당시 중학생인 아들이 인수하도록 했다. 오너와 아들이 100% 소유하는 기업으로 만든 후 태광산업 등 다른 계열사들이 이 회사를 지원하게끔 했다. 덩치가 커지자 거꾸로 태광산업 등의 지분을 인수했다. 이런 방식으로 승계 터전을 닦았다는 내용이다.

요컨대 비상장사 활용과 계열사 지원으로 후계구도를 완성했다는 얘기다. 사실이라면 편법이냐, 불법이냐의 논란 끝에 법의 심판을 받은 다른 그룹의 승계방식과 판박이다. 그래서 의문이다. 사법적 판단은 이미 내려졌는데, 왜 이런 방식의 승계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면서 오너 지위를 승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서다. 상속세율은 50%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감안하면 65%나 된다. 1조원 주식을 상속받으려면 6500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오너 지분이 많다면 세금을 내고도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100% 지분율이라면 세금 내고 상속받은 35%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기업은 20% 정도만 갖고 있어도 경영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론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룹 오너의 지분율은 대체로 10% 미만이다. 그런데도 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건 계열사들이 부족한 지분을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터에 지분이 65%만큼 날라간다면 상속을 통해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는 그룹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의문은 또 있다. 태광은 재계 순위 40위 정도다. 이런 중견 재벌도 이 방식을 썼다면 덩치가 더 큰 다른 그룹들은 어떨까라는 의문이다. 비상장사의 활용이 유일한 승계방식이라면 편법과 불법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그룹은 거의 없지 않을까. 승계구도를 이미 완성한 그룹이라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 뒤 똑같은 문제를 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속 문제는 일벌백계로는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 구조적 문제라서다. 사회적 책임의식이 약하다,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비난 여론이 아무리 비등해도 제2, 제3의 태광은 줄기차게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징벌을 아무리 강화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게다. 차제에 미국과 같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상속과 승계는 인간의 본성이다. 인위적으로 막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승계 욕구는 오히려 경제를 더 활기차게 만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오너경영 체제는 장점이 많은 지배구조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극복 과정에서도 이미 경험한 터다. 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한 데는 재벌그룹의 공이 매우 컸다.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 투자 등 오너경영의 장점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승계의 숨통을 터주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가면 거의 모든 그룹이 편법과 불법 논란에 휩싸일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업은 제대로 크지 못한다. 성공할수록 기업가치가 높아지고, 그만큼 승계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다. 정권의 처분에 운명을 맡기는 신세도 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정경유착 의혹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다. 중소기업은 이미 숨통을 터줬다. 가업상속 공제제도를 만들어 상속세를 깎아주고 있다. 문제는 재벌그룹이다. 상속세를 폐지해달라는 재계의 주장은 실현 불가능하다. 뿌리 깊은 반(反)재벌 정서 때문에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워서다. 그렇다면 스웨덴 정부와 재계가 1938년 맺은 살트셰바덴 협약의 한국판을 고민해보면 어떨까. 정부는 승계 숨통을 터주고 재계는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확대,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약속하는 대타협 말이다. 방식과 내용이야 어떻든, 더 늦기 전에 정부와 재계는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그만큼 승계 문제는 심각하다는 걸 태광이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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