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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둘레길, 술판·쓰레기 더미에 신음

중앙선데이 2010.10.31 03:00 190호 6면 지면보기
지난 26일 한 독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서울 구기동 북한산 둘레길 ‘평창마을길’ 구간에 산다는 분이었다. 그는 “우리 집이 막다른 골목에 있어 차도 없고 조용했는데, 둘레길이 생기고부터 도떼기시장으로 변했다”며 “특히 등산객이 몰려드는 토·일 주말이면 집 주변이 불법 주차에다 음주, 고성방가로 정신이 혼란할 정도”라고 했다. 이 독자는 “둘레길이 생겨 많은 사람이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이건 정말 도가 지나치다”고 호소했다.

취재후기

기자도 둘레길 ‘몸살’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 둘레길이 열린 지 사흘 뒤 취재팀을 구성, 이틀간 둘레길 44㎞를 직접 다녀 본 뒤 본지에 ‘추석에 걸어 볼까. 북한산 둘레길 44㎞’라는 제목의 기사(9월 19~20일 1, 4, 5면)를 올렸다. 당시 시인과 사진기자, 숲 해설가와 함께 걸어 본 그 길은 한적하고 아늑했다. 그리고 2주 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가족과 함께 다시 둘레길을 찾았다. ‘역시 둘레길이야’라는 감탄사는 여전했지만 그 감탄사의 끝에 뭔가 못마땅한 감정이 남았다. 연휴 마지막 날 쾌청한 날씨 덕분이기도 했지만 둘레길은 줄 서서 걸어야 할 정도로 인파가 붐볐다.

둘레길을 조성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대박’에 환호했다. 지난달 7일 개통 이후 두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북한산 둘레길을 찾은 사람은 모두 75만 명. 최근 한 달간 평일엔 하루 평균 1만여 명, 토·일 주말엔 하루 평균 3만7000여 명이 찾고 있다. 공단 측에서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세 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구기동 독자의 전화를 받은 다음 날 다시 북한산 둘레길 ‘내시묘역길 구간’을 찾았다. 이번엔 북한산국립공원 산성분소 직원들과 함께였다. 이 구간은 산길이라기보다는 마을길 위주다. 농원과 밭·밤나무·대추나무 등이 낡은 기와집들과 어우러져 마치 시골길 같은 분위기를 띠는 곳이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예전에 보지 못한 팻말들이 곳곳에 서 있었다.

‘제발 조용히… 이곳은 마을을 통과하는 구간입니다. 마을 주민의 주거생활 보호를 위해 조용히 둘레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버리지 마세요! 북한산 둘레길을 이용하시는 탐방객은 지역주민의 주거환경을 위해 자기 쓰레기는 다시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설상가상, ‘제발 버리지 마세요!’라고 써 놓은 팻말 아래에 쓰레기들이 모여 있었다.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산성분소의 이재진 계장은 “조금이라도 쓰레기가 버려진 곳이 있으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따라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며 “주말이 지난 월요일이 되면 사무소로 쓰레기 등을 항의하는 전화가 빗발친다”고 말했다.

북한산국립공원 직원들은 요즘 매주 월요일엔 둘레길 쓰레기를 치우는 일로 바쁘다. 그래도 쓰레기는 ‘애교’다. 민가 마당 한쪽에서 몰래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사람, 둘레길 옆 밭에서 고추를 따고 무를 캐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계장은 “등산객 한 사람 입장에선 ‘기념으로 한 개쯤 따 가는 데 뭘…’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하루에도 수만 명이 지나가는 둘레길 옆에 밭을 둔 주인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라고 말했다.

둘레길 곳곳에 쓰레기통을 설치하고 간이화장실을 더 만들면 어떨까. 공단 측은 난색을 표했다. “쓰레기통을 만들면 쓰레기를 더 버리게 되기 때문에 아예 쓰레기통을 안 만든다. 쓰레기는 등산객이 되가져가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쓰레기야 버리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생리현상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공단 김준석 공원시설팀 계장은 “현재 44㎞ 구간에 총 27개의 간이화장실이 있는데 이용객이 너무 많아 부족한 실정”이라며 “내년 상반기까지 20여 개소를 더 늘리고, 인근 상가에서 화장실을 일반에게 공개할 수 있도록 권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의 항의가 쏟아지다 보니 급기야 둘레길 코스가 바뀌는 경우도 벌써 생겼다. 수유동 흰구름길 구간 중 통일교육원에서 아래쪽 마을로 ‘ㄱ’ 모양으로 이어지는 400m 구간은 없어지고, 산 쪽으로 새로운 길이 났다.

둘레길을 걷는 이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둘레길 44㎞ 구간 중 65%가 사유지다. 지역 주민의 양보와 희생이 없었다면 둘레길도 생겨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지금처럼 서울시민들이 둘레길을 무분별하게 이용하다가는 최악의 경우 지역 주민들이 ‘내 땅 밟지 마라’며 실력 행사에 들어갈 수도 있다. 둘레길이 소중하다면 ‘제 발등에 도끼 찍는 일’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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