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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 힘

중앙선데이 2010.10.31 01:59 190호 29면 지면보기
인도네시아의 화산은 무시무시하다. 25일 자바섬 중부의 머라비 화산이 폭발해 주민 수십 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탈출한 부상자들은 끔찍하게도 잿빛 화산재를 온몸에 두껍게 뒤집어 쓰고 있다. 화산은 계속 으르렁거리고 있다.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먼 곳의 일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인간의 글로벌화는 20세기 말에야 이뤄졌지만, 화산 피해의 전 지구화는 오래전부터였다. 인류가 과학적으로 관찰한 화산 활동 가운데 첫 글로벌 피해를 낸 것이 1815년 4월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 폭발이다. 화산재는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 유럽과 북미 하늘을 안개처럼 부옇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일조량이 크게 줄어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이듬해 서유럽과 북미는 ‘여름이 없는 한 해’를 맞았다. 흉년과 기근이 이어졌다. 지구 평균온도가 섭씨 0.7도 낮아졌다고 한다.

또 다른 화산 폭발은 19세기 후반 서구에 음울한 세기말 문화를 낳는 데 한몫했다. 1883년 8월에 터진 크라카타우 화산이다. 하늘 높이 올라간 화산재와 먼지는 고공의 기류를 타고 전 세계로 퍼졌다. 이 때문에 이듬해 지구 기온이 섭씨 1.2도나 떨어졌다고 한다. 기온은 1888년이 돼서야 평년 수준으로 되돌아왔다.

화산 폭발은 몇 달에 걸쳐 전 세계 상당 지역에서 맑고 밝은 하늘을 앗아갔다. 화산 먼지 때문에 빛이 굴절돼 석양 무렵엔 서쪽 하늘이 괴이한 핏빛으로 물들었다. 당시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가 그린 그 유명한 ‘절규’에 나오는 핏빛 석양도 바로 당시의 하늘을 그린 것이다. 뭉크는 이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던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고 한다.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공포에 떨며 이 장면을 보고 서있었으며 자연을 꿰뚫고 지나는 자연의 절규가 들리는 것 같았다.”

화산재의 영향으로 유럽에선 달이 2년 가까이 푸른 빛을 띠었다. 말 그대로 블루스, 즉 우울의 시대가 된 것이다. 낮에는 하늘을 덮은 미세한 화산 먼지 때문에 태양 주변에 고리가 생겼다. 이른바 ‘비숍의 링’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일조량은 적고 석양은 피를 쏟은 것 같고, 낮에도 하늘이 음침했다. 세기 말의 음울한 문화는 여기서 비롯된 것일까.

지금도 언제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올봄에도 아이슬란드의 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유럽 하늘을 뒤덮으면서 항공로를 막았다. 이달에는 러시아 극동지역 캄차카 반도에 있는 시벨루치 화산과 클류체프스코이 화산에서 화산재가 분출되면서 지역 항공로가 폐쇄됐다.

한반도라고 안심할 수 없다. 백두산에선 지진 발생 횟수가 늘고 지난 7월에는 뱀 떼가 나올 정도로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고 한다. 화산 폭발 위험에 대비한 남북 협력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어디 남북한만이랴. 한·중·일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자연은 인간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다. 참고로, 1815년과 1883년 인도네시아에선 각각 7만 명과 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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