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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등뼈 6시간 우려낸 진한 육수, 푸짐한 고명에 침 꼴깍

중앙선데이 2010.10.31 01:58 190호 4면 지면보기
짬뽕이란다. 얼핏 ‘찬퐁’이나 ‘참폰’으로 들려 우리 발음으로 또박또박 짬뽕이 맞느냐고 되물어도 관계자의 표정에 어색한 구석이 없다. 오히려 짬뽕을 아느냐며 일본 관계자가 놀라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된다. 이쯤 되면 통과의례처럼 한·일 간 원조 논란이 발생하게 마련인데, 일행들 대부분은 이미 한국에서 건너간 음식이라 결론을 지은 듯 뿌듯한 표정이다. 몇몇은 매콤한 국물 생각에 화색이 돈다. 일본 관계자는 여전히 나가사키 짬뽕이 한국에도 알려졌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잠시 할 말을 잃은 모양이다. 한·일 두 나라에 짬뽕이 존재하지만 그 출발점은 중국 출신 이민자들인 화교와 관련이 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허영만 화백만이 동상이몽의 순간이 재미났는지 피식 헛웃음을 보인다.

일본 가다 - 나가사키 두 번째 이야기 : 짬뽕

111년 역사 ‘시카이로’가 짬뽕 원조
나가사키에서 짬뽕의 원조를 물어보면 백이면 백 지목하는 곳이 바로 ‘시카이로(四海樓)’다. 1899년 개업해 11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요리 전문점. 으리으리한 규모의 건물 또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나가사키의 명소 중 하나다. 요청대로 바쁜 시간을 피해 방문하니 4대 천유지(陳優繼) 사장이 미안함을 대신하는 미소로 반갑게 맞는다.

넓고 가파른 건물 계단을 오르며 “짬뽕을 얼마나 팔면 이런 건물을 짓느냐?”며 허 화백이 농담을 건네자 천 사장이 쑥스럽다는 듯 손사래를 친다. 비수기 500그릇, 성수기 1000그릇이 평균이라는 게 관계자의 귀띔으로, 원조다운 판매량이다. 취재에 할애된 시간이 짧은 탓에 차 한 잔으로 목을 축인 허 화백이 곧바로 질문공세에 돌입한다.
가장 궁금했던 짬뽕의 유래에 대해 물으니 천 사장이 둘로 나누어 차근차근 설명을 잇는다.

먼저 짬뽕이란 음식의 유래는 초대 사장이 주머니가 얇은 중국 유학생들을 위해 싸고 푸짐한 요리를 목적으로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면과 함께 주방에 남은 채소와 해산물 등을 한데 넣어 만든 게 시초라고. 원래는 ‘시나(china) 우동’이란 이름으로 불렸으나 후에 나가사키 화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푸젠성 사람들의 인사말 ‘샴뽕(또는 샷퐁·吃飯)’이 와전돼 짬뽕이 되었다는 것이다. ‘샴뽕’은 우리말로 ‘식사하셨습니까?’로 해석이 가능하며 일본인의 발음으로는 정확하게 챰퐁과 찬퐁의 중간 정도로 들린다.

이렇게 탄생한 짬뽕은 진한 국물과 풍부한 고명으로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높이 인기를 구가하며 일약 나가사키를 대표하는 향토요리로 자리를 잡게 된다. 진한 육수는 돼지 등뼈와 닭뼈를 넣고 5~6시간 끓여 준비한다. 풍부한 고명은 돼지고기와 버섯, 죽순, 파, 숙주 등의 각종 채소 그리고 오징어, 새우를 말한다. 이 고명은 면과 함께 기름에 살짝 볶아 준비하는 것이 특징으로 여기에 육수를 붓고 간장으로 간을 맞춘 후 노른자 지단을 올리면 마무리가 된다.

테이블 위로 시식용 짬뽕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자 일행들 대부분 빤히 짬뽕을 쳐다볼 뿐이다.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빨간색 국물을 기대했으나 하얀색 국물을 보고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허 화백이 한·일 짬뽕의 차이점을 차분히 설명하니 그제서야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올린다. 이 모습을 지켜본 천 사장이 흰 후추로 향을 더한 후 고명과 함께 먹어야 참맛을 느낀다며 훈수를 둔다.

나가사키 짬뽕의 첫 인상은 마치 부산의 돼지국밥과도 같이 진하고 약간은 거친 듯한 육수가 인상적이다. 육수만 놓고 보면 규슈(九州) 일대의 ‘돈코츠 라멘’의 기원이 짬뽕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고명은 우리의 짬뽕에 올려진 것과 비슷해 먹는 내내 거부감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며 허 화백이 육수까지 뚝딱 해치운다. 천 사장도 “한국 짬뽕을 먹어봤는데 육수 색과 매운맛을 제외하고는 거의 동일한 것 같다”며 허 화백의 의견에 동의한다.그러나 “천 사장도 모르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며 허 화백이 한마디를 던진다. “나가사키에서는 주문할 때 자장면과 짬뽕으로 고민하지 않아 좋네요. 하하.”

한국의 짬뽕은 한·일 합작품
현재 나가사키에서는 중국요리 전문점을 비롯해 라면집 등을 포함 1000여 군데의 음식점에서 짬뽕을 맛볼 수 있다. 종류는 오직 한 가지이지만 사용하는 재료와 육수의 맛, 그리고 조리방법에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음식점 수만큼 다양한 짬뽕을 만날 수 있다. 여기에 만두소로 짬뽕재료를 넣어 만든 ‘짬뽕만두’와 딱딱한 면에 국물을 뿌려서 먹는 ‘사라우동’도 별미에 속한다.

이제 한국 짬뽕의 비밀을 풀어 보자. 식객 취재 당시 인천 차이나타운의 화교들(이들은 대부분 산둥반도 출신이다) 증언에 따르면 개항 당시 부두 노동자들을 위해 다양한 면요리를 만들었는데 그중 고기·채소와 함께 맑은 육수로 만든 요리가 존재했다고 한다. 이것이 당시 한국을 오가던 일본인들과 나가사키 화교들의 요구에 의해 정식메뉴로 발전했고 짬뽕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들이 만든 요리에 일본식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요약이 가능한데 ‘섞다, 섞이다’의 의미로 통용되는 짬뽕이란 말에 어울리는 유래다.



*일본자치체국제화협회 클레어(Clair)와 한진관광의 후원으로 2년간 일본을 방문해 다양한 요리와 온천 문화, 자연을 경험하고 그 체험을 독자와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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