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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소심한 이들에게는…

중앙선데이 2010.10.31 01:53 190호 5면 지면보기
1890년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카바레 ‘샤누아르’. 한 사내가 피아노를 칩니다. 춤곡이지만 냉소적이었을 겁니다. 화려한 분위기에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피아니스트의 외로운 등짝을 상상해봅니다. 사내는 10여 년 전 파리 음악원에서 쫓겨났습니다. 피아노 전공으로 들어갔지만 선생들은 ‘지도 불가’ 판정을 내리고 손을 놨습니다. 악보 익히는 속도는 느렸고, 게으르기까지 했으니까요. 한번 쫓겨나고 재입학했다 군대로 ‘자연 퇴출’되고, 거기에서마저 조기 제대합니다.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참 기괴한 사람이었습니다. 비슷한 회색 벨벳 양복 12벌을 마련해놓고 여섯 벌만 닳도록 입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성에게 버림받은 후 평생 혼자 살았고요.가장 기묘한 것은 그의 작품 제목입니다. ‘말라버린 배아’라는 피아노 모음곡이 있는데, 첫 곡은 ‘해삼의 배아’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곡은 ‘갑각류의 배아’고요. 이 작품들이 쇼팽·비발디 등의 멜로디를 교묘하게 비틀고 있습니다. 19세기 말의 원조 ‘4차원’이 따로 없죠. ‘과식하지 말 것’ ‘의문을 가지고 연주할 것’ ‘구멍을 파듯 할 것’ 등의 지시어는 어떤가요. 이전 수백 년 동안 서양 음악의 악보에 적힌 ‘노래하듯이’ ‘열정을 가지고’ 같은 말들의 뒤통수를 때립니다.

그가 죽은 후 빈 방에서는 발표하지 않은 악보가 여럿 나왔습니다. 피아노 뒤에서 발견된, 외투 안에 들어 있던 구겨진 악보 중엔 ‘짜증’이라는 곡도 있었죠. 한 장짜리를 840번 반복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모든 연주자에게 작곡가의 지시를 어기는 숙명을 지도록 한 걸까요. 하지만 20세기의 대표적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는 굳이 이 지시를 지켜 공연했습니다. 13시간 걸렸습니다.

‘반복’은 원래 이 작곡가의 취미였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은 단순한 선율과 리듬이 지속적으로 반복됩니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멜로디가 5~6분 동안 조금씩만 바뀌면서 계속되고요. 게으르기 짝이 없었다는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피아노 건반 ‘도’~‘라’ 음의 좁은 폭으로 곡 하나를 끝내버리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짐노페디’ 1번입니다. 네, 요즘 상업 광고에도 자주 나오는 음악입니다. 선율이 아름다워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또 ‘나는 당신을 원해’의 관능적 멜로디엔 모든 기행이 용서됩니다.

이처럼 작곡가는 22세기에나 나올 것 같은 기괴한 작품, 파리의 살롱 음악, 고전적인 멜로디를 모두 썼습니다. 기존의 범주에 편히 기대지 않았죠. 그래서 평생 외롭게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베토벤 같은 ‘투사’는 아닙니다. 프랑스인 특유의 자유로움으로, 즉흥적 삶을 살았습니다. ‘음악 아카데미즘에 반대한다’며 싸우는 대신 ‘나를 무시하지 말라’며 39세에 다시 음악 학교에 가기도 했습니다. 결국 또 적응을 못 했죠. 음악과 삶, 남긴 글과 흔적이 엄숙주의를 산산이 부숩니다.

눈치 보며 사는 모든 사람에게 권합니다. 음악도 좋지만, 그의 삶 자체를 추천합니다. 지구에 너무 일찍 왔던 ‘외계인’ 에릭 사티(1866~1925)는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고 살았지만 우리가 늘 걱정하는 것처럼 큰 봉변을 당하지는 않았으니까요.


A 엄숙주의 깬 사티를 들어보세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클래식을 담당하는 김호정 기자의 e-메일로 궁금한 것을 보내주세요.




중앙일보 클래식·국악 담당 기자. 서울대 기악과(피아노 전공)를 졸업하고 입사, 서울시청·경찰서 출입기자를 거쳐 문화부에서 음악을 맡았다.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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