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버닝맨 축제

중앙선데이 2010.10.31 01:49 190호 31면 지면보기
미국에는 버닝맨(Burning Man)이라는 독특한 이벤트가 있다. 1986년 샌프란시스코의 해변 파티에서 기원했다고 하는 이 축제는 네바다의 리노(Reno)라는 도시에서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블랙락 사막에서 벌어진다. 이 사막지역에선 매월 8월 말부터 9월 초 사이에 일주일 동안 네바다 주에서 가장 커다란 도시인 블랙락 시티가 들어섰다가, 축제 후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버닝맨 참가자들은 새로운 세상을 같이 만든다. 열사의 태양을 피할 피난처도 같이 만들고, 자기가 몰고 온 차량을 장식해 예술활동에도 동참한다. 짚으로 된 모자를 쓰고, 처음으로 치마를 입어보기도 한다. 눈을 감은 채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마음껏 몰아보고, 치즈 샌드위치를 그릴에 구워먹는 등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을 맛본다. 어떤 사람들은 이상형으로 생각한 이성을 만난다. 토요일 밤이 되면 사막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맞아준 커다란 사람 모양의 구조물을 불태운다. 이 불을 중심으로 거대한 원을 그리는 캠프파이어가 펼쳐진다. 수많은 사람들과 새롭게 하나가 되는 큰 경험을 부여하는 것이 이 행사의 핵심이다.

그러나 행사가 끝난 후 이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며칠 동안 같이 만든 모든 것을 부수고, 태우고, 소모하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일부 자원봉사자들이 남아 몇 주간 이전의 사막과 똑같은 상태로 완전히 복원할 뿐이다.

이 행사 초기에는 질서가 잡혀있지 않아 지금보다 훨씬 거칠고 위험했다고 한다. 그러나 행사가 거듭됨에 따라 안전과 질서를 위한 많은 장치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이 더해져 오늘날과 같은 독특한 문화 이벤트로 발전했다. 열사의 사막과 몰리는 인파 때문에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때도 있지만 버닝맨은 계속 번창하고 있다.

버닝맨 주간이 되면,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 지역에선 거주 인구가 줄어든 것을 확연히 느낀다고 한다. 달리는 차량도 줄고, 주차장 공간에도 여유가 생긴다. 버닝맨 이벤트를 즐기러 많은 사람들이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블랙락 시티에는 도시를 구성하는 건물과 시스템뿐만 아니라, 몇 개의 신문사와 수십 개의 라디오 방송국이 생기고, 테마 캠프 수백 개가 즉석에서 만들어져 참가자들은 원하는 곳에서 다양한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이곳에는 실리콘밸리의 무수한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작업을 같이하고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몸속 깊이 체험한다. 경쟁회사도 없다. 라이벌 기업의 직원들이 공동 목표를 가지고 함께 일한다. 버닝맨의 이런 문화는 개방과 창조성, 공유 그리고 혁신이라는 실리콘밸리의 가장 중요한 문화와 맥이 닿아 있다. 실리콘밸리의 오픈소스 운동의 아이디어도 버닝맨의 개방형 협업에서 기원했다고 할 정도다. 버닝맨 행사가 벌어지는 ‘플라야’라고 불리는 거대한 광장은 방대한 인터넷처럼 느껴진다. 또 엄청나게 커다란 캔버스이자 사람들의 창의력을 발산시키는 플랫폼을 연상시킨다.

버닝맨은 실리콘밸리 신화의 숨겨진 요체 중 하나다. 구글 CEO인 에릭 슈밋이 공동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낙점을 받게 된 중요한 연결고리 역시 버닝맨이었다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리콘밸리의 성공은 버닝맨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우리에게도 그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새로운 창의성을 주입하고 참여자 모두가 공유하고 개방하며 나누는 문화적인 이벤트나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세상은 언제나 공부만 하고 비즈니스만 열심히 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다. 살아가는 의미도 그런 것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문화의 활력소가 필요하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