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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육’ 부추기는 통계청

중앙선데이 2010.10.31 01:48 190호 31면 지면보기
며칠 전의 일이다. 아내가 최근 통계청에서 진행 중인 ‘2010 인구주택 총조사’ 얘기를 꺼냈다. “인터넷으로 금방 끝냈어요. 애들 봉사활동 확인서도 끊어준다는데요.”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다. 알고 보니 올해 처음으로 조사원의 방문을 대체하는 인터넷 조사라는 게 생겼다고 한다. 각자 집이나 직장에서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해 10여 항목의 설문에 답하면 간단히 조사를 끝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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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지에는 공감이 갔다. 맞벌이를 하는 입장에서 조사원이 집에 찾아오면 솔직히 서로 불편하다. 저녁에 퇴근하면 애들 챙기기 바쁘고, 낮엔 집에 아무도 없으니 시간도 잘 맞춰야 한다. 인터넷 조사라면 훨씬 쉽고 편리하게 마칠 수 있다. 요즘 웬만한 집에는 인터넷에 접속되는 컴퓨터가 한 대쯤은 있고, 설사 없더라도 동주민센터나 도서관 등의 공공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다. 나 자신도 출퇴근을 위해 지하철을 타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항상 인터넷에 접속해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인터넷 조사율이 30%라고 가정하면 약 164억원의 귀중한 세금을 아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봉사활동 확인서’라는 말에는 고개가 갸우뚱했다. 조사에 답한 가정의 자녀에겐 두 시간짜리 봉사활동 확인서를 끊어준다고 했다. 학생이 둘이면 둘 다 확인서를 받을 수 있다. 인터넷 조사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통계청이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컴퓨터로 출력한 확인서를 보니 ‘경제적인 총조사에 기여하고 국가 정책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의식을 함양했다’는 내용이 평가의견으로 적혀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녀를 둔 가정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어 보였다. 참여율이 높은 학교에 대해선 별도의 혜택이 주어진다고 한다.

문제는 이 방식이 명백히 비교육적이라는 데 있다. 대부분 가정에서 인터넷 조사에 응답하는 사람은 학생이 아니라 부모다. 학생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봉사활동 확인서를 받는다. 간혹 학생이 부모의 도움을 받아 조사에 참여하는 경우도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이 직접 참여했는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사실 부모가 수고한 대가로 학생은 가만히 앉아 봉사활동 확인서를 받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자녀의 진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결코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학생이 봉사활동에 대해 무엇을 배우겠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봉사활동의 목적은 자발적으로 땀 흘리고 보람을 느끼는 데 있어야 한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식’으로 확인서나 모으는 것은 진정한 봉사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 기관이 나서 학부모들의 비교육적 선택을 부추긴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강제가 아닌 자율로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정부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 자체는 괜찮았다. ‘다른 사람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뜻하는 ‘넛지(nudge)’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적 함의까지도 충분히 검토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학생이 반드시 직접 참여하도록 하고 이것이 확인될 경우에만 봉사활동을 인정해주는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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