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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 애송 '2004 좋은 시' 문태준의 '가재미'

중앙일보 2005.03.09 18:26 종합 27면 지면보기
가재미


도서출판 '작가'서 120명 설문
시집 부문서도 '맨발' 첫손 꼽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여기 한 편의 시가 있다. 차분히 읽다보니 시 속의 '그녀'처럼 무언가 울컥한다. 울컥댐 뒤의 여운은 더 크다. '가재미'. 시인.평론가 120명이 뽑은 지난해의 가장 좋은 시다.



도서출판 '작가'가 실시한 2005 오늘의 시 설문조사에서 문태준(35.사진) 시인의 '가재미'가 모두 9차례 추천을 받아 1위에 올랐다. 문인수 시인의 '꼭지'와 박형준 시인의 '춤' 등의 작품이 뒤를 이었다.



설문조사는 이성부.강형철.이시영 등 현재 활발한 활동 중인 시인.평론가 120명이 지난 한해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시 가운데 좋은 작품을 추천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1위를 차지한 '가재미'는 지난해 '현대시학'9월호에 실렸다.



설문 결과를 보니 문단에서 문 시인의 인기가 상당하다. 가장 좋은 시인 부문과 가장 좋은 시집 부문에서 각각 16회 추천을 받아 모두 1위에 올랐다. '가장 좋은 시집'으로 꼽힌 '맨발'의 표제시는 2003년 문인이 뽑은 가장 좋은 시였다.



시는 병으로 누워 계신,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누워 계신 큰어머니를 지켜보는 시인의 이야기다. 시인이 병문안을 다녀가고 며칠 뒤 당신은 돌아가셨다. 시인에게 "왜 가재미냐"고 물었다. '가재미'는 가자미의 경상 방언이다.



"가자미 눈은 원래 떨어져 있다가 나중에 한쪽으로 몰린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게 늙는 것일 수 있겠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증거일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시인의 말을 듣고 다시 읽어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왜 '죽음만을 보고'있는지 알 것 같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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